5도(都) 2촌(村) 67

[2021.03.24] 시간에 대한 욕심을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텃밭 체류 4일차)

시간이 풍족한 적은 없었다. 한달 전 이곳을 방문할 때 까지만 해도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는 봄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조급한 바램을 갖고 있었다. 한달이 지난 지금 하루 하루를 여유롭게 보낸 날이 있었나 싶다. 집안에서의 일상, 욕심 것 신청한 온라인 교육, 버킷 리스트 수행하기, 친구들과의 산행, 나 홀로 걷기 등등.. 그동안 적극적으로 이곳에 오지 못했던 이유는 이런 저런 스케줄도 있었지만, 일주일에 3일, 하루 세시간씩 잡아놓은 온라인(서울시 50플러스에서 주관하고 있는 여행다큐 제작, 스마트폰 활용, 짧은 글쓰기) 강좌 때문이었다. 온라인 수업이므로 어디든 인터넷이 되는 공간과 노트북이면 수강이 가능했다. 스케줄이 겹쳐 지방을 갔을 때는 부근 카페에서, 계속 집에서 수강하기 답답하면 주변의 공..

[2021.02.22] 텃밭 작업 시작

은퇴후의 시간은 온전히 내 것 일 것 같았다. 그래서 좀더 적극적으로 자주 텃밭에 애정을 쏟으려 했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두 달 만에 텃밭에 들었다. 퇴비를 구하고, 해를 넘기며 떨어진 낙엽들을 긁어 모아 처리하고, 때늦은 유실수 가지를 친다.전지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보니 나무를 위한 효율적인 전지 보다는 내가 효율적으로 움직이기 편리한대로 전지를 한다. 별렀던 것과 달리 올해도 제대로 과일을 수확할 확률은 극히 적을 것 같다. 몸을 움직이고 자연과 자주 접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 것 같다.

[2020.12.11] 씨앗 정리

분홍루드베키아, 분홍바늘초, 풍접초, 골드메리, 범의꼬리... 둘레길을 돌며, 공원산책을 하며, 천변길을 걸으며 채취한 씨앗이다. 냉동실에 넣어 놓았다가 겨울이 가기전 포트와 배양토로 발아를 시켜 봄이 되면 텃밭으로 모종을 옮겨 심어야 겠다. 한해가 저물어 가는 을씨년스런 겨울임에도 꽃으로 조금더 풍성해 질 텃밭을 상상하니 벌써 봄이 기다려진다.

[2020.11.26] 삼배리 텃밭, 가을 마무리

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은퇴하면 유유자적, 여유를 가지고 머물기를 기대했던 곳인데 겨울이 다가오니 또 조급한 마음으로 물 관리를 위해 시간을 내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와서 특히 최근에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다.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흉내를 냈던 텃밭 이용에 최소한의 정리해주는 것이 텃밭에 대한 예의 일것 같아서 여름 내내 밭을 덮고 있었던 비닐을 모두 걷어냈다. 고구마 줄거리, 땅콩 잎, 옥수수 뿌리, 들깨 대, 돼지감자 줄기 등 지난 여름의 흔적들은 가을과 겨울 햇살에 말려 봄이 되면 소각을 해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지난 추석, 고구마를 수확하고 남은 무우씨를 뿌렸었다. 이미 파종 시가가 훨씬 지났지만 혹시나 하고 뿌린 씨앗이 발아는 하였지만 제대로 성장은 하지 못했다. 식..

[2020.08.04] 넘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지방 현장에 근무를 하고 있는 아들이 휴가를 맞아 올라 온다고 하여 텃밭의 일을 잠시 멈추고 집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직장에서 첫 월급을 탄 이후 가족들에게 저녁을 살 기회를 보던 아들은 휴가를 맞이하여 함께 할 자리를 마련하고는 친구들과 휴가를 보내겠다며 다시 집을 떠났다. 하다가 싫으면 일을 멈추고 여유를 보이겠다던 마음은 생각외로 성과가 나지 않는 텃밭일에 박차를 가하려 단단히 마음 먹고 농막으로 향했건만, 농막에 머무는 나흘 동안 줄곧 장마비가 내렸다. 누군가 넘어진 김에 쉬어 가라고 했던 말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아침 점심 저녁으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느라 쉬는 것인지 일을 위한 대기시간인지 분간을 할 수 없는 시간들을 보냈다. 결국 이번에도 별 성과 없이 시간을 보내고 친구들과 약속한 날짜에..

[2020.07.21~24] 남루한 처소는 제철 만발한 꽃으로 대신하지

자가 격리를 시작할 때 눈에 거슬리던 잔디 위의 풀들은 잔디깍는 기계를 가동하니 한방에 해결이 되었다. 그리고 한달이 다된 지금 지속되는 장마 비에 잡초들은 또다시 들고 일어난다. 잔디밭 한편이 배추 밭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잡초를 뽑아내지 못하며 깍아야 했던 잔디 위로 잡풀들이 무성하다. 수돗가와 창고 바닥에 에폭시 칠을 하고 잔디밭에 잡초를 뽑다 보니 나흘이 훌쩍 흘렀다. 동편으로 붙어있던 토지 하나 마저도 산림 관리사를 짓는다는 이유로 땅을 평탄화 해 놓으니, 우리터 우리 농막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어차피 불편함을 함께하려 작정은 했지만, 주변에 들어서는 시설물들과 자연 비교를 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더욱더 남루해 보이는 처소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제철을 맞아 무리를 지..

그 꽃

텃밭을 온통 뒤덮었던 망촛대. 작년까지만 해도 시간은 한정 되어있고, 그렇다고 그냥 놔 둘 수 없으니 손쉬운 방법을 택했었다. 예초기로 휘리릭~~ 그렇다 보니 어렵게 자리를 잡아가던 야생화도 도매금에 넘어갔었다. 이제 시간을 들여 꼼꼼하게 뿌리째 뽑아 나가다 보니 도매금에 함께 넘어갔던 야생화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고은 시인은 '그 꽃'을 이렇게 보았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내려 가니 더 잘 보이기는 하네.

이 궁상 맞음을 비웃어서는 안된다.

작가 김훈은 ‘라면을 끓이며’라는 산문에서 라면이나 김밥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한다. 맛은 화학적 실체라기보다 정서적 현상이라고 했다. 맛은 우리 입 안에 있을 때만 유효한 현실이고, 그 외 모든 시간에서 그리움으로 변해서 정서의 깊은 곳에서 태아처럼 잠들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라면과 김밥 그리고 미군들한테 얻어먹은 레이션(전투식량)까지 소환하며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 안된다’고 했다. 내가 농막으로 들어와 한껏 자유와 한적함을 만끽하며 온라인으로 소통을 하다 보면 가끔 번거롭고 불편할 수 있는 이곳에서의 숙식에 대하여 아주 친한 친구들로부터 심심한 위로의 회신을 받는다. 홀로 끼니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수행을 하고 있군’, ‘고생을 한 당신에게 조금 소박한 밥상이 필요’,’사막에서 고생한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