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텃밭에 들렀다. 은퇴하면 유유자적, 여유를 가지고 머물기를 기대했던 곳인데 겨울이 다가오니 또 조급한 마음으로 물 관리를 위해 시간을 내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 와서 특히 최근에는 한가하게 시간을 보낸 기억이 없다.
최소한의 시간을 들여 흉내를 냈던 텃밭 이용에 최소한의 정리해주는 것이 텃밭에 대한 예의 일것 같아서 여름 내내 밭을 덮고 있었던 비닐을 모두 걷어냈다. 고구마 줄거리, 땅콩 잎, 옥수수 뿌리, 들깨 대, 돼지감자 줄기 등 지난 여름의 흔적들은 가을과 겨울 햇살에 말려 봄이 되면 소각을 해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할 것이다.
지난 추석, 고구마를 수확하고 남은 무우씨를 뿌렸었다. 이미 파종 시가가 훨씬 지났지만 혹시나 하고 뿌린 씨앗이 발아는 하였지만 제대로 성장은 하지 못했다. 식탁으로 올라오지 못하는 아쉬움 보다는 추위를 견디며 파릇 파릇, 생명을 이어가는 것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다.
있는듯, 없는듯 그러면서도 벌써 다섯 해 이상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무릇은 이맘때가 되어야 겨우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대부분의 꽃들이 봄과 여름에 본인의 존재를 알리는 것과 달리, 무릇은 서리가 내릴 즈음 불과 열흘 정도 꽃을 피우고 그 꽃이 진 다음 가느다란 잎 몇 개를 올려서 살아있음을 확인 할 수 있는데, 올해도 꽃이 피운 시점에는 하릴없이 바빠 시점을 놓쳤다. 그나마 개체수가 늘어가고 있으니, 내년에는 풍성한 꽃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몇 년 전부터 주변의 야생 국화를 텃밭으로 영입하는 작업을 했었다. 늦가을이면 서리를 맞아가면서도 꼿꼿이 서있는 그 모습이 매력적으로 보여 특별한 지식도 없거니와 절실하지 못했던 때문에 나의 바램과는 달리 텃밭에 야생 국화의 모습은 보기 힘들었었다. 올해는 몇몇 개체의 야생국화가 자연 발생(?)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냈다. 대부분의 식물들이 자연으로 돌아간 시점이어서 개체의 크기와는 달리 마음으로 와 닿는다.
분홍 달맞이 꽃은 가녀린 꽃의 모습과는 달리 아직도 그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동안 옥상화분에서만 볼 수 있던 꽃을 텃밭으로 옮기니 야생의 환경에 잘 적응 하고 있는 것 같다. 내년 여름을 기대 해 볼 수 있는 개체이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당연히 관리가 필요하다. 시간이 흐르니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린다. 가지를 자르고 다듬기는 하지만 그저 간소화를 시킬 뿐 모양이 제대로 나올지는 알 수가 없다. 나무의 입장에서는 어떤 모습이 나오기를 바랄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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