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언제 꾸었는지 기억에 없다. 다시 말하자면 최근 들어 꿈을 꾼 적이 없다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밤 꿈이 선명하게 상기되었다. 막내 처남이 화가 난 표정으로 뭔지 모를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다. 별일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모스에서 모르가데까지 27.4Km 7시간40분, 누적 거리 691.1Km를 걸었다. 남은거리는 105.2Km로 추정된다. 오늘도 트래킹 앱은 비로 인함 인지 자주 파업을 했다.
아침부터 비와 바람을 안고 도보를 시작한다. 어제 내린 비로 길은 한껏 젖어 있었고, 사모스에서 사리아로 나오는 길은 오르막 내리막을 번복한다. 비의 변수를 생각 치 않고, 노르멀 하게 25Km이상의 거리를 오늘 걷기 목표로 잡았으나 이게 장난이 아니다.
10월중순 이후엔 많은 숙소와 쉴 수 있는 카페가 문을 닫는다. 비수기로 접어들어서 인지 아니면 도보여행자들이 줄어서 인지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묘연하다. 잠시라도 휴식을 취할 곳이 없으니 도보는 더욱 힘들어진다.
점심을 먹으며 고민을 한다. 아침부터 폭우가 오는데 다가 어제 내린 비로 길은 미끄럽기만 한데, 일정상 긴 코스가 잡혀 있어 여기서 접어야 할지 힘들어도 오늘 목적지 까지 가야할지를.
때마침,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고민을 이야기 하니~~"백 년도 못살면서 천년을 살 것처럼 고민하지 말고" 현실에 마추어 살라고 한다.
그게~
전적으로 공감 하며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현재 상황에 놓인 당사자라면 어쩔 수 없이 고민이 깊어지는 것이 인간이 아닌가? 점심 먹으며 내린 결론은 천년을 살 것처럼 고(go)~~~~한다.
사리아에서 지금 머물고 있는 모르가데 까지 오는 길은 지금껏 걷던 어떤 길 보다 아름다운 길이라 평가 하고싶다. 길 옆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돌들과 그 세월 함께 했을 고목들, 그리고 주변의 초목지들 까지 지금껏 보아온 어떤 것들보다 서정적인 길이다.
허나, 비에 시달리고 힘들어 하는 아내의 심경까지 파악해야 하는 철없는 도보 여행자의 심기도 불편하기만 하다. 사진 한 장 남기기에도 눈치가 보인다. 그래서 아쉬움이 남는 오늘 도보 코스이다.
길만 아름다우면 뭐해? 마음이 편해 야지. 오늘 아침 꿈속에 나타난 처남이 하고싶었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누나를 그렇게 힘들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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