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떠나며
관심 있게 보아오던 그림 같은 풍경의 소매물도를 다녀오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십여 년 전 이었음직한 그때, 구마고속도로를 들어서고 있을 즈음(그때는 대진 고속도로가 개통이 되지 않았던 때 였었다)
집에 계신 어머님께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몸이 불편하고 한기가 밀려와서 할 수 없이 우리집으로 오셔서 전화를 했다는
말씀과 함께..
급히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난방가동과 어머님이 불편해 하실지도 모를 이런 저런 것들을 부탁하고 집으로 돌아 오려 했으나,
불편한 것 없을 만큼 보아 드렷다는 친구의 전화를 받았음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간단히 여행을 단축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던 그때가 여건이 되면 소매물도를 다녀오겠다고 나섯던 길이었으니…
최근 팀 빌딩, 회사산악회의 무박산행 등으로 홀로 연휴를 소진하고 나니 식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보상(?)차원에서
가족이함께하는 여행제의를 했다. 큰 녀석과 작은 녀석 모두 시험기간이 가까웠다는 핑계로 함께하기를 거부했지만,
집사람이 보이는 섭섭한 눈치는 피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많은 경험과 여행을 할 녀석들 보다는 집사람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대관령의 양떼목장을 검색하던 중 무박으로 소매물도 여행광고가 눈에 띄었다.
늦은 화요일 예약을 하고 출발 전날까지 회사의 일과 고등학교 동창들의 정기모임, 그리고 상갓집을 오가느라 여행과
관련된 일정을 잊고 있었지만, 여행사에서는 수시로 준비물과 출발 장소 및 일시를 핸드폰 메시지로 통보해 왔다.
현충일인 금요일 저녁 출발하여 토요일 저녁 늦게 서울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평소 광화문 에서 출발하던 집결지를 근래
지속되는 촛불문화제로 복잡할 것 같다는 판단에 서울역으로 출발장소를 옮기었다고 했다.
저녁 아홉시반경에 도착하여 버스와 좌석을 확인하니 제법 많은 사람들로 버스는 빈자리가 없었다.
내 또래나 그보다 많은 부부가 세팀 그리고 젊은 부부들 두어 팀, 친구들끼리 여행을 하려는 결혼전후 연령의 젊은 여성들과
몇몇의 가족팀으로 관광버스 한대가 가득 차여져 있었다.
거제 학동 몽돌해변
밤 열시 서울역을 출발한 버스는 죽암휴계소를 거쳐 고성휴계소를 통과며 꿈(잠)과 현실을 넘나들다 보니 새벽 세시가 되어
거제도에 도착한다. 찜질방에서 세시간을 보내고 아침 일곱시에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제법 큰 규모였음에도 새벽세시가 지난 찜질방은 발디딜틈 없이 사람들로 가득찻다.
그중 작은 공간에 몸을 웅쿠리고 눈을 붙였다 일어나니 그래도 잠을 자지 않는 것 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동 몽돌해변앞에 있는 식당으로 이동하여 아침식사를 하고 한시간 정도 몽돌해변가를 산책하였다.
8시반 거제도 저구항에서 출발하는 배는 각종산악회와 여행사를 통해 도착한 사람들로 붐비어있었다. 미루어 짐작컨대
생계를 위해 이르다면 이른 아침 그섬으로 움직이는 사람은 없을것 같았다.
다행히도 비는 오지 않았다. 밤을 새워 달려온 날의 날씨가 하필이면 이런 날이었는가 푸념도 했지만, 그래도 비가 오거나
지척을 분간 할 수 없이 안개가 끼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위안을 삼았다. 한껏 맘먹고 섬구경을 하러 남해안까지
내려가 배를 타려하는 순간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어 섬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들었다.
약간의 안개가 시야를 방해하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만족할수야 있겠는가?
소매물도
여행의 가장 큰 효과는 감동이다.
그것이 감정으로의 느낌이든, 풍경이든 아니면 지나간 역사에 대한 새로운 발견이든, 처음 가는 곳에서의 감동이 있을 수 있고
다시 찾았을 때 처음과 또 다른 감동이 있을 것 이다.
이번 여행은 풍경 그 자체에 대한 감동이었다. 몇년전 출장 차 그리스에서 일을 보고 관광을 할 때 관광지의 어느 곳이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것이 곧 기념으로 남고 남겨진 사진이 곧 작품이 되었다고 느끼드시 소매물도와 인접한 등대섬이 바라다
보이는 망태봉 아래의 그 장소는 어떤 시각으로 담더라도 그렇게 담겨질 수밖에 없는 구도의 풍경이며, 이는 곧 저명한
사진작가가 찍어놓은 사진과 달라 보일 것 없는 풍경이 된다는 것(물론 날씨의 변화와 색감 그리고 빛의 추적등 그들의
작품과 같아 보일 수은 없는 부분이 발견될지라도), 달리 구도를 잡을 필요도 잡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곳에 서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지르는 감성은..어쩌면..이었다.
아름다운 섬을 그 섬자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이어진 이웃섬에서 볼수 있다는 것 또한 매물도와 등대섬이
가지고 있는 경치의 장점일것이다. 여행은 아쉬움을 남기어야 감동도 깊어 진다고 하지만, 이번 여행은 시간이 너무 짧음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아홉시 십분도착해서 열한시삼십분 출발하는 두시간 반의 시간은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망태봉에서 등대섬을 내려다 보고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선근처로 갔다가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가는 시간으로는 충분하겠지만,
등대섬으로 이어진 몽돌해변을 지나 등대가 있는 곳에서 소매물도의 전경을 보는것, 공룡바위 위의 바람의 언덕주변을
몸소 밟아 보는것, 선착장의 우측편에 위치한 남매바위, 그리고 해안선 곳곳을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 하다는 것이다.
등대섬으로 들어가 돌아보고픈 마음을 여정의 시간때문에 포기를 하고 되돌아 오며 망태봉 중턱에 위치한 폐교주위를
배회해 본다. 오늘아침 누군가가 이섬을 돌아보다가 사고를 당해서 이 폐교에서 응급 구조요원들이 헬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면서 망태봉으로 향했었는데, 지금은 조용해진 폐교의 운동장을 돌아보고픈 생각이 들었던 때문이다.
가끔 작은 시골의 국민학교나 분교를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운동장이라도 돌아보고 나오고 싶은 이유는 이제는 기억속에
아련한 어린시절의 향수를 억지로라도 끄집어 내고 싶은 심리 때문이리라. 폐교로 들어가는 정문을 닫아 놓았지만, 그곳은
누군가에 의해 가지런히 운동장이 정리되어 있었고 동백나무가 울창한 폐교의 우측 어디론가 들어가는 길이 있을 것 같아
그길을 찾고싶은 마음이 한없이 들었지만, 굳이 들어오지 말라고 하는 곳을 우회해서 들어간다는 것도 한편으로는 우스꽝스러워
포기를 한다.
상대적인 여유로움(저구항으로 돌아가는 배가 출발하는 시간과 지금 이곳에서 내게 남아았는 시간)으로 폐가에서 할머니가
팔고있는 미역을 몇장 고르며 주변을 둘러본다. 담을 타고 넘는 담쟁이 뒤로 보이는 선착장의 모습과 이름을익힌지 몇 년
안되는 인동초
[인동초를 보면서 왜 갑자기 한번도 가보지 못한 목포 앞바다의 신안도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어릴적 내가 살던
중부지방에서는 인동초를 볼수가 없었던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흰색인동초와 함께있는 노랑색의 인동초, 그리고 가끔씩
희귀하게 보이는 붉은 인동초의 꽃을 보며 알수없는 신비로움이 함께했으며, 그 향 또한 여느 향보다도 특이하게
내 기억속에 자리잡아가고만 있었다.]
를보면서, 무수한 사람이 오갔을 아주 좁디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와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로접어 들었을 때 누군가 툭..친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분으로 친목계원들과 함께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죄를 짓고는 어느 후미진 고을인듯
맘놓고 거닐 수 있겠느냐는 생각을 하며 홀로 웃음을 삼킨다.
선착장이 보이는 소매물도 작은 마을은 한참 공사 중이다. 이번 여름을 겨냥한 걸까? 어쩔 수 없다는 개발논리는,
불과 24시간이란 짧은 시간에 내가 사는 곳에서 한반도의 끝인 이곳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지만, 얼마 후 모든 섬들이
일반화 되고 상점이며, 민박의 난무로 신비로움이 없어질 수 밖에 없음을 생각하면 그 또한 아쉬움이다. 어쩔 수 없는 아쉬움…
이십 여분의 시간이 남는 관계로 선착장에서 소라와 멍게를 파는 좌판에서 아직도 실체를 모르는 아쉬움을 한 접시의 회로 달래본다.
돌아오는 길에
오늘 들러가야 할 함양 상림은 귀경도중의 시간을 채우기 위해 짜 놓은 프로그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두시간
정도의 이동시간을 약간의 피로감에 눈을 감는다.
지금 어제 지나온 그 섬에 대한 글을 정리하며, 언젠가는 또다시 그곳으로 달려 가 볼 것이고, 그때는지는노을과 일출,
그리고 섬 전체를 훝고 만지고 뒤져도 이삼일 정도면 충분 할 섬의 구석 구석을 파인더에 담아 오겠다는 마음이 드는걸
보면 이번 여행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이 되었다.
'자유(등산·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8.06.22] 휴일 자투리시간에 돌아본 오산 물향기 수목원 (0) | 2008.06.22 |
---|---|
[2008.06.21] 더위와 생활소음에 더욱 진가를 발휘하는 병목안 공원 야경 (0) | 2008.06.21 |
[2008.05.31] 한라산 - 절정을 빗겨간 철쭉 산행 (0) | 2008.05.31 |
[2008.05.24] 설악산 Team Building (0) | 2008.05.24 |
[2008.05.16] 화초모음 - 한택식물원에서(1) (0) | 2008.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