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늦은 밤 상주 시내로 들어오는 길목에는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형태의 백열전구가 가로수를 따라 즐비하다. 그 생경한 모습을 곱씹어 보니 감의 고장을 상징하도록, 감의 모양에서 고안된 것 같다.
경상도의 '상'자가 바로 이곳에서 왔다는 이야기도, 겨울이면 간식으로 빠지지 않던 달콤한 곶감의 기억도, 아주 오래전부터 '상주'라는 이름을 품고 만들어졌을 터인데, 60중반의 생에 상주 땅을 밟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 세대에게 상주는 지도 위의 점이라기보다 삶의 배경 어딘가에 늘 존재하던 막연한 그리움 같은 곳이었을 터이니, 난생 처음 마주한 실체는 생각보다 낯설지 않다. 아니, 정겹기까지 하다.

이른 아침 북천강변을 걸어본다. 강바닥에 몸을 누인 누런 마른풀 들은 바람에 몸을 맏긴채 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십 년의 시간을 이겨냈을 벚나무의 갈라진 껍질은 이제 생기를 잃어가는 우리들의 거친 손등을 닮아 보인다. 그 깊은 주름 사이사이로 북천의 칼바람이 파고들지만, 고목(古木)벚나무의 거친 숨결은 묵묵히 그 고통을 견뎌낸다.

낙동강 제1경 경천대는 낙동강 1,300리 물길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전망대서 내려다 본 풍경은 겨울 낙동강의 푸른 물줄기와 깎아지른 절벽, 노송이 어우러져 가히 낙동강 제1경이라는 이름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일품 풍경이다.

전망대를 뒤로하고, 조금 더 강변 가까이 자리잡은 경천대에 서면 거대한 은빛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한 겨울 낙동강이 가장 먼저 가슴으로 들어온다. 겨울 강물은 흐름을 멈춘 것이 아니라, 단단한 얼음의 막 아래로 제 온기를 갈무리한 채 깊은 사색에 잠겨 있다. 얼마만에 들어보는 소리인가.. 뚜둑..뚝..간간이 들려오는 ‘뚜둑’ 하는 얼음의 갈라짐은, 마치 긴 겨울 잠을 자는 강이 내뱉는 나직한 잠꼬대처럼 고요한 강 바람을 타고 울려온다.

경천대에서 본 강물은 건너편 회상리의 농지를 부드럽게 휘돌아 나간다. 억겁의 세월 동안 물길이 다듬어 놓은 그 유려한 곡선을 보며 서두르지 않고 순리대로 살아온 우리들 삶의 궤적에 비유하고 싶어진다. 색채를 덜어낸 갈색의 대지와 시리도록 푸른 얼음판, 그리고 그 위를 덮은 하얀 서리의 변주. 풍경은 화려하지 않아 더 깊은 아련함을 전달한다.

낙동강 풍경이 들려주는 고요한 서사에 압도되어 놓쳐버린 늦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자전거 박물관을 지나게 되니 잠시 배고픔을 뒤로 하고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2002년 문을 연 대한민국 최초이자 유일한 자전거 전문 박물관이다. '자전거의 도시’ 상주의 자부심을 그대로 압축한 공간 자전거 박물관에서도 낙동강 상주보와 경천교가 어우러진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아버님 기제사를 지내고 늦은 밤 경주에서 올라오며 들러, 기대하지 않았던 상주이기에 매력에 푹 빠져 하루 더 머물러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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