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숙소의 물리적 환경은 지금껏 머문 중 최고였다.
물론 가격도 역대 최저 금액으로. 산타크루즈 수도원이 소유로 되어 있는 이 숙소는 영리보다는 종교적 지원을 받아서 운영 하는 것 같았다. 수도원의 기숙사를 들어 온 듯 깔끔하고 정갈했다.
하지만
순례자 친교의 시간, 성당미사, 순례자강복,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저녁식사 나눔 등의 행사와 아일랜드 인이라고 소개한 신부로 보이는 분의 입실 절차가 마치 속세와 단절시킬 것 같은 분위기 이다. 강제성은 없다고 했으나 아침에 그곳을 빠져 나오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편한 그 속세로 돌아오는 야릇한 경험을 했다.
사아군에서 렐리에고스까지 30.9Km 약8시간, 누적 거리 449Km를 걸었다. 남은거리는 347Km로 추정된다. 중간 중간 놓여진 이정 표지석에 쓰여진 거리는 왔다리 갔다리 하여 신뢰가 가지 않는다.
오늘은 기승전결 '플라터너스'다.
얼마 전 하루 종일 포도밭이 눈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내용을 전했었다. 오늘 평소보다 먼 거리를 걸으면서 눈에서 떠나지 않은 풍경은 도로 변으로 심어진 플라터너스 나무들이다. 지루 하리 만치 긴 나무들의 행렬이다.
도보 초기에 만난, 이곳을 두번째 왔다고 하는 분은 지금 레온에 머물고 있다. 나는 내일저녁이나 되어서 그곳에 도착한다. 어제 저녁 톡을 주고 받으며 건강상태를 확인 하다가 사아군(어제 내가 머문 곳)에서 레온으로 점프(대중교통을 이용하여 구간을 이동 하는 방법)를 고려해 보란다. 오늘과 내일 걸을 구간이 멀고 지루하니 많은 사람들이 그 방법을 택한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난 때문인지 오늘 유독 길을 걷는 도보여행자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 같기도 하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오다 보니 정보를 얻기 위함은 물론이고 때로는 개인의 생각과 조언까지 의견을 피력하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다.
어떤 사람은 큰돈 들여 이곳까지 와서 점프를 하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관심 있는 것만 취해 보는 것이 뭐가 문제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 의견들에 더이상 토를 못 달 논리적으로 공감 가는 의견을 주신 고수가 있었으니,
"다른 사람의 삶 들여다 보지 마시고 그저 당신의 도보에 만 집중하시면 됩니다."
한껏 공감이 간다.
참을 수 없는 통증까지 참아내지는 못하겠지만 그깟 심심하고 지루함이야, 그것도 내가 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에 있다면 얼마든지 즐길 준비는 되어 있다.
그래도,
바람에 부딪혀 오는 수 많은 포플러 잎사귀의 흔들림처럼 가끔씩 내 마음도 따라 흔들려서 걱정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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