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미황사에서 본 눈은 단비로 변하여 메마른 대지를 잠시 적셔 주었다. 흐린 날씨에 대한 보상과 남도의 대표적인 천년 사찰을 방문하는 한껏 부푼 기대감과 함께 송광사로 향한다.
한시간 남짓의 거리인 보성에서 순천의 송광사로가는 18번국도에는 18Km에 달하는 메타세콰이어 길이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길로 지정된 보성 복내면 송재로에서 사전 정보없이 만난 메타세콰이어의 풍경은 오늘 날씨와 잘 어울렸다.
사흘간의 등산을 포함한 여정으로 인한 피로감으로 차량 이동을 계획하였으나 송광사를 돌다 보니 선암사로 이어지는 산길에 걷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아마도 “천년불심길”이라 명명된 길의 이름에 유혹 되었나 보다.
그 길은 스님들의 산책 코스 였을 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상상은 해발 725m나 되는 송광 굴목재를 지나면서 잘못된 것 임을 깨달았다. 둘레길 이라도 산에 있으면, 산을 오르는 길이다.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 대나무 숲을 일렁이는 소리를 내고, 가을에 떨어지 낙엽은 산을 오르는 여행객에게 밟힘의 촉감을 준다. 그리고 코로나와 무관한 세월과의 확연히 다름은 정적과 고요다.
두개의 굴목재(송광굴목재, 큰굴목재)를 지나고 계곡을 따라 도착한 선암사는 겨울 늦은 오후임에도 햇살이 비치는 양지바른 곳에 위치해 있다. 예상치 못한 산행의 피로감으로 선암사를 방문한 목적도 희미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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