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동 오련폭포>
마등령을 오르며..
보름달이 환하게 웅장한 바위들을 비추는 이른 새벽, 난 마등령으로 향하는 설악산 한 능선 중턱에 서 있었다. 두시간 동안 그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관념들을 하나 둘씩 버려가고 있었다.
다음주에 예정되어있는 회사의 일들, 가을이면 줄줄이 다가오는 경조사와 동창들의 모임, 지난주 이런 저런 일로 신경전을 벌이던 회사 동료, 책상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지내던 근무시간들..
머리의 중앙으로부터 시작된 땀방울이 관자놀이와 얼굴을 지나 땅으로 떨어지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멀리 동해에서 먼동이 터 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리 찬란한 일출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순간 함께 산행을 하는 사람들 마저 의식 속에서 놓아 버린다.
최근 일탈을 꿈 꿀 때마다 항상 난 그곳에 가보려 했었다. 오세암이라는 신비스럴 법한 그 암자와 지명에서 마저 정겹게 느껴질 법한 마등령, 그리고 그 중심에 웅장하게 서있는 공룡능선~~
불그레 밝아오는 그 동쪽편으로부터 허공에 깔려있는 연무를 보며 어느덧 공룡능선의 들머리에 선다. 새벽 네시 설악동 소공원을 출발 후 산행길에 오른 지 네 시간이 지났다.
<마등령에서 본 일출>
험한 세상에서도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런 저런 이유로 살갑게 대하지 못했던 분들을 생각하면, 오래된 편두통이 갑작스런 증상을 나타내듯 머릿속을 흔든다. 그 편두통은 내가 환희에 차 있거나 이런 저런 이유로 사회를 살아갈 만 할 때는 느낄 수 없었던 증상들이다. 모든 것이 내가 노력한 때문이고 내 잘난 때문에 이런 날들이 있다고 생각할 뿐, 그런 그런 순간에 그들은 내 머릿속에 남아있지 않았다.
나 혼자 잘났다고 살아오던 날들을 잠시 돌이켜 보면, 그들은 항상 내 주위에 내편이 되어있었다. 한편으로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믿는 눈길로 주변에서 묵묵히 날 지켜 보았었다.
어떤 순간이든 어떤 형태든 그저 잘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항상 마음속에 담고 지켜보고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형 만한 아우가 없다는 말은 그러한 모든 뜻을 글귀 하나에 함축하고 있는 건 아닐런지. 그래서 그 조직은 세상의 어떤 조직보다 위대하나, 그 위대함이 천박하게 수치로 나타나지 않을 뿐이다.
아주 오랫 만에, 아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님 두 분과 나의 집사람을 동반하여 최근 내가 일탈을 꿈꾸던 설악산의 공룡능선을 지나가고 있었다.
<신선대에서 본 공룡능선>
공룡능선에서 나를 추스리며..
한달 동안 일에 빠져 움직임을 등한시 하고, 그래서 평소보다 2Kg이상 몸집을 불린 육신을 끌고 오름과 내림을 번복하는 그 능선의 산행으로 몸은 지쳐가지만 의식은 상대적으로 또렷해지는 것을 보며 이제야 비로소 산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평소 산행을 하면서 터득한 한가지 사실은 움직인 만큼 내 몸이 이동 되어져 있고 시간을 투자한 만큼 원하는 목적지로 움직여져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인생을 살아가는 아주 기초적인 진리일것이다. 기초적이면서도 세상의 기본이 되는 그래서 누구든 그런 의식에서부터 출발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나한봉~1275봉~신선봉을 잇는 세개의 큰 봉우리와 몇개의 작은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예정된 시간을 충분히 소비하고 난 후에야 공룡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신선봉에 도착을 한다.
오랜 산행으로 더위와 갈증에 목이 타도 배낭 뒷주머니에 있는 물 마실 수 없이 귀찮지만, 용아장성의 위용과 붉게 물든 가야동 계곡, 천불동으로 이어지는 천화대와 범봉 그리고 그 위용으로 보아 공룡의 잔등이라고 표현해도 손색이 없을 1275봉, 그 봉우리를 정면으로 도전하듯 꼬리를 물고 올라가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천불동-단풍>
체력의 한계점마저 지나고 나면 비로소 아름다운 풍광들이 눈으로 들어온다??
계획된 산행은 아니었지만, 설악에서 최상의 단풍을 볼 수 있는 천불동 계곡을 최근 몇 년 동안 해를 거르지 않고 산행을 했었다. 하지만, 설악의단풍모습이 해가 갈수록 아름다움을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는 한다.
꼭... 느낌에서 만이 그런 것은 아닌 것 같다.
해마다 방송에선 곱게 물들었다는 설악의 단풍 소식을 전하지만 가을 가뭄과 지속되는 연무로 인한 적당치 못한 빛의 양, 지속되는 고온현상때문에 정작 내가 본 단풍은 그리 풍요롭지 못하다. 단풍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로 마르고 찌들고 퇴색되어져 그저 바스락 거리는 낙엽 더미로 변해 있었다.
국립공원 지도상의 산행시간으로 보면 열 한시간의 거리를 열한시간반에 걸쳐 산행을 마친다. 보통사람들 수준으로 산을 내려왔건만 다리의무게가 천근 만근이다.
하지만,
의미를 부여해도 좋을 함께한 사람들과 함께한 산행이기에 그 어느 산행보다도 뿌듯함을 한껏 느낀 산행이었다.
<마등령에서 공룡능선을 보며>
<마등령을 오르며>
<공룡능선>
<범봉에서 >
<용아장성-왼쪽중간능선>
<천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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