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마도 이렇게라도 생존해 있음을 느끼고 싶었나 보다.
마음 같아서는 첫차를 타고 떠났어야 했다. 새벽6시30분에 안양역시외버스터미널에서 떠나는 버스를 타면, 태안까지 족히 3시간은 걸릴 것 같았다. 바다가 보이는 어느 곳으로 떠나는 버스 시간을 고려하려면 터미널 근처에서 아침을 해결해야하고 한시간 이상을 더 움직이면 비로소 바다가 보일 것이니, 그렇게 서둘러도 10시 반이나 되어서야 그 바닷가에 도착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마음같이 움직여 지지 않는다.
나 스스로 핑계를 찾았다고 핀잔을 받아도 할 수 없지만 그렇게 평소 같지 않게 그렇게 이른 시간에 집을 빠져나오기에 무엇인가 서먹한 설명이 필요한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단 둘이 있는데, 아내를 이해 시키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면 과연 아내와의 관계가 원만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안양 역에서 태안행 버스를 탄 시간이 10시 반. 아내는 매일 번복되는 주변야산으로 운동을 떠난 시간을 택해서 였다.
며칠을 별러오던 일이니, 떠났다는 것만으로도 내 자신에게 면목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까짓 하루 서해안의 바닷가를 본다는 것이 커더란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행위를 해서라도 내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가 보다.
어깨의 통증이 내 인생의 발목을 잡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요즘 몇일 조금 우울해 있다. 내가 우울해 할 시간을 줄이기 위해 별의별 쓸데없는 일들을 벌리고 있다는 것은 나 자신에게만 허락된 비밀이다. 아무런 행동을 하고 있지 않으면 난 죽어 있다고 여겨진다.
오랫동안 친해왔다고 하는 친구(주변환경의 변화로 이제는 친하다는 의미가 퇴색 된지 제법 되었지만)는 마치 역마살이 끼어 집에 있기를 거부하는 나를 보며 불쌍하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비쳤다. 집 밖을 떠돌아 다니는 내 행동이 그에게는 안타깝게 보였나 보다. 그건 각자의 생각 차이고 어찌 보면 집안에서 편안함 만 추구하는 그에게 연민을 느끼니 그것을 가지고 왈가 왈부 할 일은 아니다.
헌데, 요즘 내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다. 기타, 탁구, 자전거, 당구, 골프 등등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중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 회전근개 파열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후 조금만 어깨근육을 쓰더라도 통증이 수반되니 하고 싶은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라고 하지만, 비 수술로 치료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그러다 보니, 어깨 통증이 내 삶을 지배해 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우울한 기분이 드는 날들이 늘어만 간다.
평소 처절하게 살아가야 그 나마 후회 없는 인생이라 생각 했었는데, 지금 나는 처절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생각과는 달리 삶의 어려움을 스스로 만들고 부딪혀서 헤쳐나가는 편은 아니다. 최선의 노력은 해 보되, 가능하면 위험으로부터 떨어져서 생활하고 사전에 위험이 오지 않게끔 사리며 살아온 것 같다. 정말 큰 위험함이 몰려오면 감당 할 자신이 없었던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나마 운이 좋아서 커다란 위험은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게 맞나 싶다. 나 뿐 아니라 가족을 위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 노력은 인정을 하지만, 하나 뿐인 내 삶을 처절하지 않게 살아온 것은 시간을 두고 후회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서해랑길 태안 해변에서
태안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천리포 해수욕장으로 왔다. 여러 경로 중 가장 빠른 시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탔던 것이다. 이른 봄 바닷가의 바람은 의외로 세다. 지역주민을 군데군데 떨어뜨리고 종점인 천리포 해수욕장에 도착하니 나와 또다른 한 사람이 남는다.
나보다 두 어살 더 들어 보이는 그 또한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바닷가를 찾은 것 같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서 새로운 곳에 대한 동경이나 호기심은 발견하지 못했다. 익숙함 보다는 열정이 잠들어 버린 때문이 아닌가 그냥 짐작을 해 본다.
천리포 항구를 돌아 서해랑길 69구간(만리포해수욕장노래비부터~의항출장소)의 일부구간을 역주행한다. 천리포 수목원 에코힐링센타에는 스페인에서 본 이름 모를 꽃과 수선화가 꽃을 피웠다. 국사봉을 돌아 다시 바닷가로 내려와 만리포 긴 해변을 걷는다. 만리포 해수욕장 노래비는 서해랑길 68구간이 끝나는 지점이다. 다시 68구간을 역 주행하여 모항항을 향한다.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어져가고 있다. 모항항에서 태안으로 나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모항초등학교로 나온다. 언제 있을지 모르는 버스를 기다리다 근처의 슈퍼마켓에 들러 버스 시간을 문의하니, 버스정류장에 기록 되어져 있는 시간을 보라고 한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 안내문구를 살펴보고 츠측해 보고 스마트폰으로 확인을 하는 과정을 거치니그제 서야 감이 잡힌다. 그런 행위를 하면 결과를 알 수 있는데, 너무 쉬운 방법으로 슈퍼를 향한 나와 매일 그 곳에 있으니 한 마디 정성스럽게 가르쳐 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그곳 주인과 참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에 잠시 헤픈 웃음이 나왔다.
이제 호기심 보다는 편안함을 찾아 가리라
만리포해변을 걷고 있는데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저녁 때가 다 되어가니 어디서 방황하는 남편이 궁금 했나 보다. 어렵게 온 이곳에서 1박2일은 보내야 하겠다고 마음 먹었건만 자신이 없다. 오늘 걷는 상황을 봐서 이곳에서 하루를 지낼 수도 있다고 했지만, 마음은 벌써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태안 버스 정류장에서 막차를 탔다. 어둠이 밀려오는 때문인지 그 큰 버스에 딱 두 사람이 타고 출발 했다.
물론, 중간 경유지를 들르며 사람을 채워 갔지만 살고있는 도심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워 온다. 도심은 아직도 바쁘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활기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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