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깊이 침잠하여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고인에 대한 회한과 미안함뿐이건만 마음은 가볍게 밀려오는 너울성파도를 맞이하는 듯 하다.
그렇게 닷세를 하루같이 지냈다. 그 슬픔은 거즈 밖으로 새어 나오는 얕은 상처의 피멍처럼 스멀 스멀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힐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상갓집을 갈 때마다 고인의 나이를 묻는다. 고인 보다는 상주에게 위로를 주기 위한 요소를 찾아내었었던 것 같다.
‘연세가 그 정도에 돌아가셨으면 호상이네요.’
가시는 분도, 보내는 분도 그 호상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까?
어떻게 죽는 것이 자존감을 지키며 죽어가는 것일까를 생각하는 것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단, 그 죽음의 비참한 단면을 남아있는 사람과 공유하는 것을 인지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아마도 신의 영역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당신이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다고 인식하는 시점부터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자책과 어떻게 마무리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를 깊이 고민한 흔적은 마치 삶과의 사투를 보는 것 같다.
어머니!
이제 그 사투 멈추었으니 부디 편히 영면(永眠)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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