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 지침을 따른다는 명분하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지 않았던 습관적인 의식 행사도 함께 줄어드는 것 같다. 너 댓 시간을 달려가 차례상에 절을 하고 다시 너 댓 시간을 올라와야 하는 것도 합리적이지는 않다.
올해는 지방에 계신 형님이 차례를 모시고, 수도권에 모신 아버님 산소는 우리가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지난 추석에도 같은 방법으로 멀리 서로 오가는 수고를 덜었었다.
지난 추석날에는 늦가을 비가 제법 내려 모두가 산소에 가는 일정을 생략하고 홀로 간편하게 다녀왔다. 이번 설에도 밤새 눈이 내렸다. 꼭 가야만 할 상황은 아니었다. 꼭 가지 말아야할 상황도 아니니 산책 삼아 가족이 집을 나섰다. 출가한 딸과 사위 그리고 아들, 집사람 다섯이서.
39번 도로는 한산했다. 큰 도로에는 눈이 녹았지만 산소 근처로 접어드니 평소 차로 올라가던 산길은 눈 때문에 진행하기가 힘들었다. 차례를 지내는 동안 잠시 또 함박눈이 내렸다.
불편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모두가 좋았던 건 아닌 것 같다. 아들과 딸은 얼른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눈치지만, 집사람과 나는 눈치 없이 온 산을 덮는 눈을 보며 좋아한다.
잠시 밖으로 나가면, 다른 세상을 볼 수 있는데 (꼭 필요한 시간에 원한다고 볼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너무 편리함 만 추구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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