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때 장자를 만났다.
지은이 ; 강상구
펴낸곳 ; 흐름 출판사
저자가 장자를 만난 때는 인생의 또다른 전환점에서 였다. 자의에 의해서가 아니고 사회적인 환경(IMF)때 였으니 얼마나 답답했던 시절이었을까? 그 시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읽었던 책을 기반으로 다시 책을 출판할 수 있었으니 절대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내 입장에서 보면 ‘전화위복’이라고 까지 말하고 싶다.
나 또한 인생의 전환점에서 장자를 만나서 인생을 깨달은 사람을 만났다. 그가 만났던 장자의 느낌을 내가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슬프기는 하다. 어찌 보면 매사가 흔들리는 전환점에서 만난 그들 이었는데…..
저자가 인생의 한 전환점에서 장자를 만나서 깨달음이 있었다면, 나는 왜 그런 깨달음을 얻을 수 없는 걸까? 아마도, 죽을 때까지 흔들릴 수 밖에 없는 남아있는 날들에 대한 예측의 어려움과 꼭 예측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일한 생각 때문이 아닌지?
또다른 사유는 저자는 책을 읽을 때 70%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책을 읽으라 한다. 그러하지 않으면 저자가 전달 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기 힘드니 교감 할 수 없기 때문에 책 읽는 효과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독서에 대한 무지함을 탈피하고자 마구잡이로 책을 선택하여 읽어 보고자 했던 나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아서 공감을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니 읽은 것 보다는 읽는 것이 낳지 않을까 하는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 지금의 심정이다.
책의 말미로 가면서 인용 글귀에 대한 지속적인 설명이 조금 거슬렸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오만
위무후가 서무귀에게 말했다. "나는 백성을 사랑합니다. 의롭게 살기 위해 전쟁을 멈출까 하는데, 좋은 생각이죠?"
서부귀는 대답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게 백성을 해치는 근본입니다(愛民, 害民之始), 의롭게 살겠다며 전쟁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이야말로 전쟁의 근본입니다(為義偃兵, 造兵之本), 착한 일을 하겠다는 생각이 악의 그릇입니다(成美, 惡器).” 서무귀 48 Page
동곽자가 장자에게 물었다.
"자네가 말하는 도라는 게 어디 있는가?"
"없는 곳이 없지.”
"그러니까, 그게 어디냐니까?"
"땅강아지나 개미에 있지."
“하필 그렇게 싸구려 예를 드나?"
“기장이나 피에도 있지."
“점점 그렇게 싸구려로만 가긴가?"
"기왓장이나 벽돌에도 있고."
"해도해도 너무 하는 거 아닌가?"
“똥이나 오줌 속에도 도가 있지.” (지북유)
주변 만물에 진리가 있고, 가장 하찮고 지저분한 똥이나 오줌 속에도 도가 있지만, 늘 보니까 자세히 안 보고, 자세히 안 보니까 못 볼 뿐이다. 조금만 거리를 두고, 조금만 낯설게 보면 세상은 신기한 일 투성이다. 58 Page
매일 지나다니는 한남대교의 난간 장식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수없이 봤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리 퐁네프 다리의 밋밋한 아치형 교각은 그리라고 해도 그릴 만큼 꽤나 유심히 보고 다닌다. 신기하니까. 처음 보니까. 그런데 파리에 사는 사람들도 그럴까?
신영복의 지적처럼 내가 사는 곳의 재발견, 나아가 나의 재발견, 그것이 여행의 참뜻이다. “여행은 떠나는 게 아니라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자기의 정직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픈 상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58 Page
신발이 맞으면 발을 잊는다(履適忘足), 혁대가 맞으면 허리를 잊는다.<달생>
신발이 작아서 발이 아플 때, 혹은 신발이 커서 자꾸만 벗겨질 때, 우리는 발을 의식한다. 허리띠가 커서 바지가 흘러내릴 때, 또는 허리띠가 작아서 숨을 못 쉴 때, 우리는 허리를 의식한다. 신발이 맞으면 발은 생각하지 않는다. 허리띠가 맞으면 허리를 생각하지 않는다. 고마움 마저 잊는 그 순간,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61 Page
뱁새가 깊은 숲에 들어도 몸을 두기는 한 나뭇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생가 강물을 마셔도 제 배를 채우는 데 지나지 않는다. <소요유>
불가에서 비슷한 취지의 선시가 전해 내려온다.
“집이 천 칸이나되는 대궐이라도 / 하룻밤 자는 데는 방 한 칸이면 족하고 / 만석의 논을 가졌더라도 / 한 끼 먹는 데는 한 되 쌀이면족하다."(선사귀감)
뱁새 혼자 사는 데 숲 전체가 필요하지 않다. 나뭇가지 하나면 된다. 뱁새가 숲 하나를 모두 다 차지하겠다고 고집을 부릴 이유가 없다. 숲 하나를 전부 차지하지 못한다고 화낼 이유는 더더욱 없다. 생쥐가 물을 마시면 강물을 다 마시는 게 아니다. 생쥐의 배를 채울 만큼, 딱 두 모금이다. 저 혼자 강물 다 차지하겠다고 덤비는 미련한 생쥐는 없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이 그런 미련한 짓을 한다. 74 Page
책을 읽을 때 70퍼센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 책을 보라고 한다. 모르는 내용이 30퍼센트를 넘으면 어차피 읽어도 이해하기 어렵고, 당연히 저자의 생각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내 경험과 내 지식이라는 창을 통해서만 받아들인다. 내가 알지 못하는 건 설령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럴 리가 없다'며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바로 그 마음을 씻어내야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 215 Page
집단을 위해 개인이 모든 걸 희생해야 하는 시대가 있었다. 회사일이 바쁘다며 부인의 출산 때 곁을 지켜주지 못하는 게 당연했고, 딸의 생일날 저녁을 함께하지 못하는 게 당연한 시대였다. 조직원 노릇을 하느라 남편 노릇, 아버지 노릇은 서툴렀던 시대다. 언제부터인가 개인이 복원되는가 싶더니, 어느 틈에 개인의 고독과 단절이문제다. 각자가 섬처럼 세상에 떠 있다. 왜 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르는 섬이다. 외톨이 섬이다. 관계는 낯모르는 사람과 SNS로만 맺는다. 가상의 세계, 무한 폭력이 허용되는 세상이다.
- 중략 -
결국 다시 사람이다. 사람은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존중 받을 때 삶의 존재 의미를 찾는 존재다. 그래서 공감과 위로가 필요한 존재다. 김남주의 시처럼 “찬 서리 /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 조선의 마음”이 절실하다. 251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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