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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8.23]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雪國)

루커라운드 2021. 8. 23. 21:10

 

한번쯤 접해 보았어야 할 작품을 끝내 소화하지 못했다면 영원히 숙제로 남아있을 것이다. 내게는 박경리의 토지나 삼국지와 같은 종류의 소설이 그에 속한다. 우리나라 정서와 가장 비슷하다는 외국 문학 중 일본의 유명한 소설 또한 그 숙제의 범주에 속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소설을 찾았다. 그저 장편소설 이겠거니, 그래서 소설속의 인물을 숙지하고 일본의 문화를 조금이해하면 최종적으로는 남아도는 시간의 투입이 관건 이겠서니 했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의외로 볼륨이 적었다. 페이지당 글자도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그렇게 짧은 분량의소설을 숙제하듯 읽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읽고 난 후에 보통의소설들과는 다른 서술과 기승전결을 찾을 수 없음에 조금은 황당했다.

 


제목  ; 설국(雪國)
지은이  ; 가와바타 야스나리, 유숙자 옮김
펴낸곳  ; 민음사

 

설국은 도쿄에 부모님의 재산으로 커다란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시마무라 라는 사람이 일본중서부의 니카타현 온천 지역을 여행하다 만난 고마코를 다시 만나러 가는 중 국경지대라고 일컷는 접경지역을 기차로 지나며 요코라는 여자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을 한다.

요코는 유키코라는 남자의 연인이며 병든 그를 고향으로 간병하러 온 여인인데, 그 지역에서 게이샤를 하는 고마코를 유키코의 약혼자이다.

유키코라는 남자는 세상을 떠나고 시마무라는 요코에게 사랑의감정을 느끼고 있지만, 시마무라에게 헌신(?)하는 고마코에게는 허무한 사랑을 하지 말라고 무언의 강요를 하고 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소설의 첫 귀 절에 나오는 문장으로 평론가나 북 리뷰하는 곳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이 문장은 그래서 그런지 읽을수록 이 소설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행기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연애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 두 번 쯤은 그 연애소설 주인공들의 정사 장면은 들어가 있어야 할 것 같았는데, 서두를 읽으면서는 그리 조급하게 느껴지지 않았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언제 그런 글들이 나올까 신경이 쓰였다. 종국에는 내가 이해하지못한 것인지 아니면 그들은 관계를 맺지 않은 것인지 혼란스러울 만큼 작자는 내용상 충분히 있음직한 정사 장면을 아낀 것 같다.
 
소설을 읽으며 어쩌면 이제는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는 지난 세대가 그리워서 글속의 풍경에 무언가를 찾으려 하나, 우리가 몸소 접하지 못한 문명은 어떠한 표현으로도 원래 그 문명을 설명하여 이해시키거나 표현이 부족 할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우린 더 이해가 부족한 그 문화에 집착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글의 문맥이 마치 LP판의 바늘이 툭툭 튀듯 매끄럽지 못한 느낌은 번역자의 후기에서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의 번역자는 “한나라의 고유한 문화와 정서가 짙게 배어 작품일수록 번역이 힘들다. 그런 까닭에 설국은 참으로 번역자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소설이다.” 라고 하여 독서에 무지한 나에게 위안을 남겨 주었다. 

 

[책 내용중에서]

시마무라는 뺨에 소름이 돋을 듯 서늘해져서 뱃속까지 말갛게 되는 느낌이었다. 단숨에 텅 빈 머리 가득 샤미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제로 그는 그저 놀랐다기보다 완전히 압도당하고 말았다. 경건한 마음에 사로잡혔고 회한(恨)의 상념에 완전히 젖어 들었다. 자신은 이제 무력할 뿐, 고마코의 힘에 밀려 속수무책으로 떠내려 가는 것을 기꺼워하며 몸을 던져 떠 있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93Page]

무위도식하는 그에게는 일없이 굳이 힘들게 산을 걷는 것 따윈 헛수고의 표본인 듯 여겨졌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또한 비현실적인 매력도 있었다. [96Page]

그토록 고생한 무명의 장인(匠人)은 이미 죽은 지 오래고, 아름다운 지지미만이 남았다. 여름에 서늘한 감촉을 주는, 시마무라 같은 이들의 사치스런 옷으로 변했다. 그다지 신기할 것도 없는 일이 시마무라 에게는 문득 신기하게 여겨졌다. 온 마음을 바친 사랑의 흔적은 그 어느 때고 미지의 장소에서 사람을 감동시키고야 마는 것일까? [136Page]


내 소설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씌어졌다. 풍경은 내게 창작을 위한 힌트를 줄뿐 아니라, 통일된 기분을 선사해 준다. 여관방에 앉아 있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어 공상에도 신선한 힘이 솟는다. 혼자만의 여행은 모든 점에서 내 창작의 집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