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3일 소설의 첫 장을 넘기기 시작하였으니, 4개월만에 10권을 모두 읽었다. 한달 평균 2.5권을 읽었으니 일없이 지내는 사람으로서는 많은 량을 읽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년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
한달 동안 다섯 권을 읽고 나머지 다섯 권을 3개월에 걸쳐 읽은 것은 처음 책을 읽으려 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날수록 해이해 진 것으로 판단이 된다. 그래도 고무적인 것은 끝까지 읽었다는 것.
80년대 최고의 작품, 80년대 최고의 문제작, 금단을 깬 대표소설, 출판인 34인이 뽑은 이 한권의 책 1위, 현역작가와 평론가50인이 뽑은 한국 최고의 소설, 전국 대학생이 뽑은 가장 감명 깊은책 1위, 한국의 지성 49인이 뽑은 미래를 위한 오늘의 고전….등등.. 수많은 단체와 평론가들이 추천한 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역사가 아닌 소설을 시간의 흐름대로 나열을 하고 이야기를 만드는 작업이 사실을 기록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 아니던가?
개인적으로는 근대사에 대한 무지함을 의식하는 계기와 더불어 그 시대에 대한 관심이 더 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또다른 작가 박경리의 ‘토지’를 읽고 싶은 동기를 부여한 책으로 기록이 될 것이다.
한낮의 땡볕 아래서 오히려 생기 돋아나는 생명이 매미라면 또 그만큼 싱싱한 몸짓을 무수한 빛의 반짝거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미루나무였다. 다른 나뭇잎들이 모두 풀 죽어 꼼짝을 하지 않는데도 미루나뭇잎들은 깨소금 쏟아지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끝없이 하는 것처럼 수도없이 많은 빛 가루들을 반짝 반짝 쏟아 내고 있었다.
- 중략 -
다른 나뭇잎들과 달리 미루나뭇잎은 광택이 나면서도 감나뭇잎이나 동백나뭇잎처럼 두껍지 않고 얇고 가벼운데다 줄기와 잎을 잇는 마디가 길고 연한데, 특히 잎 가까운 부분의 연하기가 아이의 속살 같아 미세한 바람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많은 잎들은 제각기 팔랑거리는 것이고, 그때마다 윤기 나는 이파리들은 햇살을 되쏘아내고 있었다. [7권56Page]
탱자나무울타리는 토담이나 싸리나무울타리, 대발 울타리 같은 것들과는 달리 계절을 따라 그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는 정취를 지니고 있었다. 봄이면 꽃 울타리였고, 잎 무성한 여름이면 초록 비단 울타리였고, 탱자가 노랗게 익는 가을이면 황금 덩이 울타리였고, 잎도 열매도 다 떨어진 겨울이면 가시 울타리였다. 무더운 여름이면 으레 위통을 벗어 젖히고 등물도 하고, 그런 모습인 채로 감나무 그늘 아래 놓인 평상에 나앉기도 했다. 그런데 무성해진 탱자나뭇잎들은 그런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가려주는 초록 비단이 아닐 수 없었고 [9권 8Page]
「손 동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가 보기엔 최남선의 친일은 계급적 기회주의의 표본이오. 그는 돈 많은 중인 집안의 자식이었는데, 그 중인 계급의 생리란 게 아주 묘하고도 고약합니다. 중인 계급은 지배계급과 기본 계급 사이에 끼여 중간착취를 일삼는 게 그 계급적 특성 아닙니까. 그 중간착취계급의 대표적인 게 관리로서는 아전 부류고, 도시사회에서는 상인이고, 농촌사회에서는 마름인 건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런데 그들의 공통점은 지배 계급에게는 열등감과, 기본계급에게는 우월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 이중성은 위로는 계급상승욕구로 나타나고, 아래로는 지배확대욕구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들은 위를 향해서는 간사한 아부와 아첨을 일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는 악랄한 횡포와 억압을 자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또한 직접생산을 위해 땀 흘리는 노력을 하지 않고도 두 계급 사이에서 정치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철저한 보수집단인 반면에 정치세력의 변동에 따라 언제나 민감하게 변신하는 반응을 나타냅니다. 그래서그들의 이중성은 민첩한 현실주의와 교활한 기회주의를 낳게 됩니다. 그들의 그런 기생충과 같은 생리는 일제치하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9권 336 page 박두병이 손승호에게 최남선에대한 개인적인생각 지리산 에서]
물줄기의 그 유연한 흐름은 물기 젖은 긴 머리카락을 빗겨내린 것 같기도 했고, 볏잎 푸른 들녘이 부드러운 바람을 타고 느린 물이랑을 이루며 흔들리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물줄기의 흐름은 언제까지나 그렇게 부드럽고 얌전하지만은 않았다. 앞을 가로막는 바위가 나타나면 여지없이 부딪쳐 제 몸을 바수었고, 갑작스럽게 낭떠러지가 나타나도 주저 없이 제 몸을 굴려 떨어뜨렸다. 물줄기는 그때마다 몸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들이 모아져 골짜기의 양쪽 벽을 그리도 세차게 두들겨대는 큰 소리가 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물소리는 물줄기가 장애물과 싸우는 소리였고, 그 소리가 크면 클수록 그만큼 장애물이 많다는 증거였다. 물줄기는 장애물들을 만날 때마다 부딪치고, 깨지고, 부서지고, 휘돌고, 솟구치고, 나뒹굴고, 처박히고, 맴돌이질 쳤고, 그러면서도 흩어지거나 멈추지 않고 하나로 뭉쳐 끝끝내 목적하는 곳까지 도달하는 것이었다. [9권 338page]
노고단에 오르는 순간 그들이 마주친 것은 커다랗게 둥근 불덩어리였다. 상상하기 어렵게 큰 그 불덩어리는 해였다. 해는 하늘 가운데 떴을 때보다 열 배는 더 커진 것 같았다. 하늘 끝에서 떨어져내리기 직전인해는 스스로의 몸을 그렇게도 크게 키워 하루를 마감하는 모습을 찬연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해는 서쪽 하늘을 스스로의 빛으로 온통 붉게 물들여 자신의 모습을 떠받치게 하는, 세상에서 제일 큰 휘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휘장의 붉은색은 생기 퍼득이는 광채와 윤기 반짝이는 채색으로 싱그럽게 빛을 발하고 있었다. 해는 하늘을 그리도 곱고 아름답게 물들이느라 제 빛을 다 써버려서 그러는 것일까. 하늘 가운데 머물때는 눈이 시다 못해 눈물이 나도록 강한 빛을 내쏘아 그 모습을 보지못하게 하더니만 이제는 그 빛을 거두어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보이고 있었다. 한낮의 해는 작으면서 맵고 거만했는데, 저물녘의 해는크고 부드럽고 친근했다. 노고단이 장만해 놓은 하늘은 사람의 눈으로는 감당해 낼 수 없도록 넓고도 넓었다. 그 서쪽을 물들인 휘장만으로는 모자라는 것인지 해는 무슨 큰 깃털들처럼 옆으로 뻗친 구름층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 엷고 가볍게 뜬 구름들도 층층이 붉게 물들어 찬란한 색조로 빛나고 있었다.
커다란 불덩어리는 이글거리는 황금빛 몸을 아래서부터 느리게게 감추어가고 있었고, 그 주변의 하늘은 커다란 황금빛 동그라미를 그리며 빛나고 있었고, 그 빛이 엷어지는 데서부터 황적색으로 물들고, 황적색이 엷어지면서는 청적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자연스러운 빛의변화와 조화를 따라 구름의 층도 색감을 달리해가고 있었다. [ 9권 3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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