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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8] 배낭에 담아온 중국

루커라운드 2021. 11. 29. 08:48

 

입동이 지나자 마자 이틀 동안 가을비가 내렸다. 여름 장마도 아니고 가을비는 비록 이틀이라고 해도 지루한 느낌을 주었다. 빛을 내서라도 시간을 사서 야외로 나가고 싶은 계절이 아니든가? 딱히 할 일이 없어진 것 같아 평소 게을리 했던 것 중 해보아야 할 일을 생각해 낸다.

얼마전 딸이 주고 간  “배낭에 담아온 중국” 책이 생각 났다. 중국 여행을 꿈꾸며 구한 책인데 읽다 보니 너무 난해한 부분들이 있다고 했다. 네가 난해하면 아빠는 어떤지 알면서 아빠에게 이런 책을 권하냐? 라는 물음에 난해하다는 의미가 조금 다르다는 설명을 했지만, 그 말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는 없다.

옥상의 아지트로 올라가 아침음악방송을 듣다가 아내가 외출한 것 같은 시간에 내려오니 세탁기를 돌려놓고 빨래가 다 되면 처리 좀 해 달라 부탁을 하며 급히 집을 나갔다. 우선 달달한 믹스 커피를 한잔 타 놓고 넓은 거실의 식탁에 앉아 책 읽기를 시작한다.

책의 내용 보다는 밝은 현광등의 식탁에서 홀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는 현실이 가슴까지 두근거리게 만든다.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은 독서 삼매경이다.



작가 우상후이는 전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대만의 대표적인 지식인이다. 대만 사회의 입시 시스템과 권위체제 그리고 교육계에 대한 비판과 의견을 주로 Issue화 시긴 작가이다.

“배낭속에 담아온 중국” 은 작가가 쓴 여러가지 기행문 중 하나로 유학을 비롯한 학업을 마치고 사회로 나오는 아들과 함께 중국 본토를 여행하며, 보고 느끼고 대화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 근접한 중국의 동부를 종단하는 (헤이허-하얼빈-선양-베이징-다롄-칭다오-상하이-홍콩) 여로 여서 먼 중국의 이야기이기 보다는 좀더 친근하게 다가오기는 했다.

 

[책에서 발췌한 내용]

 

중국을 여행할 때는 많이 보고 적게 먹어야 한다는 것이 그간 나의 경험을 통해 얻은 원칙이다. 이 원칙을 아들에게도 몇 번 주지시켰지만 아들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더니 하얼빈에서 기어이 배탈이 나고 말았다.

"그러게 개똥같은 소리도 들어 두면 다 득이 되는 법이다.”

덕분에 나는 아들을 놀려줄 좋은 핑계를 얻었다. 아내를 놀리면 평생 시달려야 하고 친구를 놀리면 날 떠나겠지만 아들을 놀리는 건 재미가 쏠쏠했다. 어쨌든 놀리는 게 욕하는 것보다는 더 점잖으니까. - 68 Page

 

중국에서는 수해가났다 하면 어김없이 도시 전체가 섬처럼 고립되거나 대로가 강으로 변하고 건물 3층 높이까지 물에 잠긴다. 게다가 중국은 한 번 물에 잠기면 며칠씩 물이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 '홍수가 도시와 사랑에 빠져 한번 오면 떠날 줄 모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겠는가. 게다가 비는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라는 이유로 성장이든 정부든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그들을 탓하는 사람도 없다.

'백 년만의 최대 홍수', 아니 '천 년만의 최대 홍수'라며 하늘을 원망하는 소리가 드높다. 천 년 전 대홍수를 보기나 한 걸까? 인간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하늘을 탓하는 것일 뿐이다. - 158page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쾌감은 스스로 매우 위대한 사람이라고 느낄 때 오는 뿌듯함이다. 여행하는 내내 칭기즈칸과 알렉산더 대제의 가여운 인생'을 동정하며 우쭐해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가본 나라의 수를 다 합쳐도 내가 다녀본 나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최소한 그들은 일본과 미국은 가보지 못했다. 5성급 호텔에 묵어본 적도 없다. 아무리 화려한 몽고바오를 준비해놓고 초대한다 해도 난 "성의는 고맙지만 당신이 쓰시오!” 라며 멋지게 사양할 것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위대한 것은, 현금과 신용카드만 있다면 그들처럼 길에서 만나는 외국인들과 치고 박고 싸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 187page

 

 

"얼어붙은 대지 위에 눈보라 휘몰아치는 이곳이야말로 북국의 풍광이로구나.”

첫 구절부터 기품과 풍류, 호방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웅장하고 화려한 수식은 지도자만의 것이고 국민들은 고통과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다. 국가도, 국민도, 이상도, 비전도 없었다.

"국가나 정당의 지도자를 평가하는 기준에 따라 마오쩌둥의 <심원춘>에 점수를 매겨보겠니?” -223page

 

우리는 산업혁명을 경험한 마지막 세대이고, 우리 자식들은 정보혁명을 맞이한 첫 세대이다. 우리는 지금보다 100~200년 이상 뒤처져 있고 그들은 이 세상과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나의 할아버지가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했던 일은 손과 발을 움직여 삼륜차를 끄는 일이었고, 아버지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으며 나는 스쿠터를 타고 출근했다. 가끔씩 멋있게 보이려고 두 손을 놓고 타기도 했는데 가속페달을 밟아야 할 때만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살짝 돌려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이런 수고로움을 감당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들은 두 번째 손가락을 까딱이는 것만으로 마우스를 자유자재로 타고 다니며 통신하고, 쇼핑하고, 공부를 할 수도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앞선 것을 따라가는 것이었지만 우리 아이들은 새로운 것을 창조해야만 한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일하고 배우기만 하면 그만이었지만 그들은 상상력과 창의력, 통합능력을 발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우리는 '민주진영을 굳게 지키는 것으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국제 경쟁에 직접 뛰어들어야 한다. 

 

우리가 만든 제품은 미국 슈퍼마켓 진열대의 제일 아래 칸에 있다가 점점 위로 올라가기만 해도 성공이었지만, 그들이 만든 제품은 매장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위치에 진열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소비자들의 선택을 기다릴 기회조차 없어진다. 

우리는 자국 내에서 동서남북 종횡무진하기만 해도 만족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언제든 '국제적인 이동이 가능해야 한다. 또 우리는 '경제에만 매달렸지만 그들은 국가관리에도 힘을 써야 한다. - 283page

 

베이징에 가봐야 자기 직급이 낮은 걸 알고, 상하이에 가봐야 자기 돈이 적은 줄 알고, 하이난에 가봐야 자기 건강이 나쁜 걸 안다. - 291page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보름 가까이 지나서 지금 11월이 지나가기 전이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중간 부분까지 열심히 읽다가 친구들과의 여행, 산행 그리고 드론교육 등에 시간을 빼앗기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동안 딸이 와서 식탁 위에 놓여있던 책을 보면서 열심히 읽은 흔적(인상에 남는 곳은 포스트잇 으로 표기를 해놓으며 읽음)을 보면서 다 읽었느냐고 물었을 때 한동안 책 읽던 일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이 책을 전해주며 난해 하다는 말이 어렴풋이 이해가 된다. ‘거친 세상으로 나가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주는 특별한 선물’이라는 부제가 붙은 <배낭에 담아온 중국>은 중국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생활 전반이 종횡무진 펼쳐진다는 책의 소개말에 긍정은 하지만, 어찌 책 한권에 방대한 내용을 다 담을 수 있겠나? 

아들과 중국을 여행하며 지역에 대한 특징과 음식을 이야기 하던 전반부는 예상 했던 대로의 여행 서적이지만, 후반에 가서 아들의 사회진출에 대한 여러가지 견해는 다분히 주관적이고 필자 위주의 이야기여서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아마도 이러한 것이 앞과 뒤의 맥락을 달리하여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부러울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여지없이 부자, 혹은 부녀가 어떤 장르이든 대화를 하며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부분에서 이미 사회인이 되어버린 나의 아들 딸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더 늦기 전에 어떤 방법으로든 유사한 여행을 할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