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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3] 태백산맥 (10권중 5권을 읽고)

루커라운드 2021. 2. 20. 01:39

 

1월 23일부터 2월 18일 까지 약 한달에 거쳐 10권으로 되어있는 대하소설 태백산맥을 5권까지  읽었다.

도서관으로 향하는 발길에 약간의 흥분된 감정이 섞여 있는 듯 했다. 두어 달 전 도서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책을 빌리는 절차를 알아보기위해 처음 도서관을 방문한 적이 있기는 하다. 오늘은 사회생활 이후 내가 읽어보려 했던 책을 빌려 보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는 첫번째의 행동이기 때문이다. 

40여년을 직장생활을 한다는 핑계를 대며 역사에 대한 관심이나 독서를 게을리 해 왔다. 책을 읽는 중에 느낀 또 하나의 게으름은 사상이나 이데올르기 그리고 이것들이 용해되어 있는 정치나 사회적 현상에 대한 판단과 이해다. 

최근에 보수와 진보의 짜증을 유발하는 그들의 끊임없는 다툼을 보면서 정치적, 사회적인 안정만을 생각했지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다툼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이 책 속에서 진보와 보수의 갈등 한 단면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나 한몸 움직여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하기에 주위를 돌아 볼 시간이 없어 시대적인 흐름에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금껏 내가 가지고 있던 보수(?)적인 성향의 배경은 어디에서부터 일까? 내가 살아오면서 주입된 일관 적인 교육에서 비롯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동학운동이나 반민족 특위, 친일 사상, 신탁통치, 사회주의 그리고 공업화가 되지 않았으면 그 소속에 몸담았을 소작인들의 삶.. 이런 것들이 누가 강요하지 않는데도 소설 속에서 전달이 되어온다.  뒤늦게 텅 비어있는 그릇에 아무런 거름없이 들어오는 이야기들이 내 삶에 커더란 영향을 줄 수 있는 시점은 아니지만, 내 생각의 전체적인 흐름에 방향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작은 이야기의 줄거리 앞에서는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주변의 자연을 묘사하거나,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글들을 앞세워 놓아서 소설의 본문을 읽는 것과는 또 다른 수필을 읽는 듯한 재미를 주었다. 그런 수 많은 감성적인 글을 쓸 수 있기에는 앞서 감성적인 느낌을 받았을 터이고, 이의 원천은 독서와 사고와 그리고 사물과 자연을 경이롭게 접하고자 하는 작가의 경험 일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5권분량의 책을 읽어가며 이해에 걸림돌이 되는 문장은 딱히 없었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읽기 속도로서도 한주에 한권 이상을 무난하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제법 많이 보였던 서정적인 표현의 글들을 발췌하지 못한 것은 이야기의 전개에 끌려 고유명사를 외우고 기록하는 것으로 노력을 소진하였던 것 같다. 절기가 달라지는 자연의 현상과 꽃을 특징 있게 설명한 두 문단을 발췌 한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결의 차가운 신선감처럼 그 물소리의 맑음에는 티가 섞여 있지 않았다. 잎 떨군 나무들의 단출한 모습들이 보여주는 시각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이미 절기가 겨울로 바뀌어 있음을 청각으로도 촉각으로도 느낄 수가 있었다. 절기가 바뀌면 햇빛이 달라지고 바람이 달라지고 물이 달라진다 .. 아니, 그 순서가 뒤 바뀌어야 옳다. 

 

햇빛과 바람과 물이 달라져 절기를 바꾸는 것이고 뒤미처 인지(人智)가 그것을 깨달을 뿐인 것이다. 뒤늦게 나마 인간이 그런 자연의 조화를 깨달음은 인간 만의 지혜로움에서가 아니라 인간의 영육(靈肉)이 거기로부터 비롯된 까닭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교감인 것이리라. 

 

한줄기의 햇살, 순간을 스치는 바람, 한 조각의 구름, 한 방울의 물, 하나의 나뭇잎. 하나의 열매, 그런 것들이 전생의 내 모습이고, 후생의 내 모습임을 어찌 부인하랴. 현생이 다만 인간으로 지음된 인연의 업보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있을 뿐인 것이다. [2권274Page 운정스님이 화엄사에서 선암사로 가며]

 

꽃이라면 어느 꽃이나 다 곱고 예쁘지않을 수가 없었지만 꽃이라고 다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눈바람 속에서 제일 먼저 피는 진홍빛 동백꽃에서부터 찬 바람이 비쳐서야 꽃망울을 여는 보랏빛 들국화까지 꽃은 헤아릴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동백꽃은 한스러운 아름다움이 있었으나 그 나뭇잎이 너무 억세어서 싫었고, 작약은 흐드러진 큰 꽃송이에 넘치는 붉은 빛이 눈 시리게 고왔지만 어딘지 거만스러운 것 같아 친해지지 않았고, 연 보랏빛 수선화는 꽃 모양도 특이하고 곧게 뻗은 진초록 잎새도 정갈해서 좋았지만 꽃이 너무 연약해 빨리지는 것이 아쉬웠고, 진하게 붉은 칸나의 선명함도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지만 턱없이 큰소리로 웃어대는 실없는 가시내 같이 마음에 닿지 않았고, 보랏빛 잔 꽃송이가 풍성한 덩이를 이루는 수국은 먼발치에서 보면 구름덩이 같아 가슴을 설레게 하지만 가까이 가면 쿠린느낌의 향기가 역해 마음을 돌리게 했고, 마치 와와 소리 치기라도하는 듯 무더기로 일시에 피었다가 꽃샘 바람을 타고 숨 자지러 지도록 나부끼는 벚꽃의 그 지향 없는 슬픔이 가슴 저리게 했지만 일본 놈들의 꽃이라서 미움이 앞섰고, 땅바닥에서 반뼘도 자라 오르지 않고 연분홍꽃을 피우는 채송화의 그 앙증스러움도 귀여웠으나 그건 예뻐 할 수는 있어도 이쪽 마음을 담을 수는 없었고, 장닭의 붉은 볏을 빼박은 맨드라미는 친근한 꽃이었지만 계절이 바뀌어도 시들거나 변할 줄을 모르는 그 둔감이 지루했고, 보랏빛 꽃망울을 열어 가을을 장만하는 것 같은 들국화는 그 외로움이 마음을 끌어 당겼지만 한편으로 그 외로움이 앞으로 팔자가 될까 두려워 뒷걸음 치게했다. [3권259Page 외서댁이 봉숭아와 치자꽃을 좋아하는 까닭 설명에 앞서]

이렇게 방대한 이야기와 구성, 그리고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장편의 소설을 읽고 논리적으로 정리하여 본다는 것은 내게는 국민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기 위해 논문을 작성하는 것에 비유 할 정도로 쉽지 않다. 책 뒷 표지에 실린 문학전문가들의 서평으로 대신 하려 한다.

항쟁 이후의 문학에 있어 어디에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따를 것이 있겠는가. 나는 80년대 초 감옥에서 「토지」를 읽어 보았거니와 80년대 말 감옥에서 읽은 「태백산맥」의 감격은 실로 치열한 것이었다. 보아라. 우리 문학이 여기까지왔다. 장하구나, 장하구나! 어찌 큰북 울려 작가 조정래를 한없이 칭송하지 않을손가! 
고은 (시인) 

염상진과 김범우, 하대치 등의 이름은 이미 일반명사가 되어있다. 이제 90년대, 해방된 욕망들의 무도장에서 되돌아보는 「태백 산맥」의 모습은 우람하기보다는 맑고 서늘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것은 삶의 당위를 향해 전신을 내던진 사람들의 향기이며 아름다움일 것이다. 그들의 모습은 한 시대 역사의 뜨거움과 그것을 추적하는 작가의식의 냉정함이 만남으로써 만들어졌다. 그러나 그 둘의 만남을 가능케했던 것이 80년대라는 저 용광로 같은 시대의 정신이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서영채 (문학 평론가)

'수난받는 민중상'에서 '이념을 지닌 역사적 당위성으로서의 민중상을 부각시키려는 분단문학으로 적극적 방향전환을 시도한 작품이다. 분단을 혼란과 관념론적 비극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사적 갈등과 모순구조로 인식하는 시각에서 「태백산맥」은 창조되고 있으며, 이는 소설이라기보다는 처절한 민족사적 대 실록이다. 
임현영 (문학 평론가) 

우리 소설문학의 빛나는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는 「태백산맥」이 완간된지 어언 5년의 세월이 흘렀다. 80년대의 과학적인 역사의식과 저자의 치열한 열정이 행복하게 만나서 우람하게 솟았던 「태백 산맥」은 무엇보다도 탈이념과 원초적인 욕망의 논리,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넘치는 이 90년대에 반드시 읽혀야 될 책이다. 「태백 산맥」을 읽으면서 우리는 거대한 역사를 통과 한 진정한 '존재의 가벼움’을 감지 할 수 있을 것이다. 
권성우 (문학 평론가)

민족분단의 원인을 규명하고 민족통일을위한 실천적 이론을 제시하는 일은 이 땅 위에 사는 지식인에게는 하나의 운명 일 것이다. 1945년 이후 분단시대사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 여순반란사건에서부터 시작되는 「태백 산맥」은 이 땅의 현대사에 대한 한 작가의 문학적 해석일 뿐만 아니라 민족 분단의 원인을 규명하고 분단된 민족을 하나로 잇는 작업의 일환으로 보여진다. 「태백 산맥」은 또한 민족문학이 민족사의 전개와 어떻게 대응하느냐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이다. 
고 송건호 (언론인, 한국 현대사가) 

「태백 산맥」의 진정한 작가는 누구인가? 그것은 작가 조정래가 아니다. 이 작품의 진정한 작가는사람다운 삶의 실현을 위해 싸우다 스러져간 이름없는 숱한 영혼들, 바로 그들이다. 그들의 아픔, 그들의 눈물, 그들의 외침이 작가의 손을 빌려 되살아나고 있을 뿐이다. 그 외침을 들을 수 있는 자, 그들도 이 작품의 작가이다. 
김철 (문학 평론가,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