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끝난사람
지은이 ; 우치다테 마키코
옮긴이 ; 박승애 옮김
펴낸곳 ; 한스미디어
다시로는 예순셋의 나이로 정년퇴직을 맞이한다.
토쿄 법대를 나와 일본에서 알아주는 은행에서 마흔 다섯까지 잘 나가던 그는 중역으로 진급하지 못하고 자회사로 밀려 이제 직장생활을 마치게 된 것이다. 경제적인 안정은 문제가 없지만 자회사로 밀려난 것에 대한 콤플렉스와 일 아니면 흥미가 없는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때우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찾은 체육관에서 젊은 경영인을 만나 다시 일을 하게 된 그는 사장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회사의 대표를 떠 맞게 되어 그가 꿈꾸어 오던 회사를 경영하게 된다. 하지만, 순조롭게 운영이 되던 회사가 어려움을 맞게 되고 결국엔 도산을 하면서 빛까지 떠 안으며 가족과의 관계에 불화가 생긴다.
가족이나 동창생들에게 자존심 만을 내세워 온 그는 정년과 새로 맡은 회사의 경영 그리고 도산의 과정을 거치면서 인생의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내려 놓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간다.
정년을 맞이한 해에 우연히 서점에서 눈에 띈 책을 구입 하였다. 물론 해외근무 중 휴가를 나온 시점이었다. 다시 일터로 복귀하여 책을 읽을 당시는 아직 퇴직을 하지 않은 상태이고, 이후 계약 직으로 2년을 더 근무한 때문인지, 책의 내용이 가슴으로 와 닿지 않았었던 기억이 있다.
두번째 읽으면서 많은 부분에 공감이 갔다. 시간이 충분하여 생각을 더해 읽은 것도 그렇거니와 은퇴 후 뜻대로 진행되지 못하는 현실 때문에 소설 속의 주인공 생활이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일 손을 놓으면서 일에 대한 상실감과 다른 사람들에게 초라한 심정을 과장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지 못하는 심정까지 세심하게 잘 표현되어있다.
직장과 무덤 사이에 아무것도 없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 하다. 그것이 꼭 일이 아니더라도..
나이와 함께 그때까지 당연했던 것들이 하나 둘 사라진다. 그것이 세상의 이치다. 부모, 반려자, 친구, 아는 사람, 일, 체력, 운동 능력, 기억력, 성욕, 식욕, 출세욕, 그리고 남성성, 여성성..
남자로서의 매력이나 여자로서의 매력은 나이에 의한 것이 아니며, 나이를 따지는 일본은 성숙하지 못한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창때'의 남자와 여자가 분명 있듯이 인간에게도 정점이라는 것이 분명있다. 그때가 지나면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이 하나둘 사라지 간다. 당연히 다른 세대에 대한 호소력이 사라진다. [263 Page]
육십 대는 배가 고픈 것이다.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 뱃속에 집어넣고 싶다. 나야말로 그러고 있지 않은가. 이러다가 '후기고령자’로 분류되는 나이가되면 더 이상 허기를 느끼지 않게 될지도 모른다. 사라져 버린 것들이 더 많아 상실감과 체념의 폭이 커져서 자신의 그러한 변화를 인정하고, 그 때는 살기 위해서라도 현실적인 각오를 하게 되겠지. 그러나 육십 대는 허기를 용서하지 않는다. 말도 안된다. 아직 이렇게 건재 하단 말이다. 아직, 아직, 아직도 끝난 것은 아니란 말이다. [264 Page]
'직장과 무덤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따분한 것인가. [302 Page]
나는 지금 더 이상 비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서도 "아아, 예순 다섯이라 다행이다"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평균 수명까지 산다고 해도 앞으로 15년. 그 정도라면 비록 사회 적으로 매장된 신세라 해도 그럭저럭 견뎌 낼 수 있는 세월이다. 만약에 삼십 대나 혹은 사십 대였다면 그 앞에 남은 40 년, 50 년을 헛되게 만든 꼴이 된다.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이 들겠지.
남은 세월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것을 꼭 불행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앞으로 새로운 길이 열릴 가능성이 있는 나이가 아니라는 것에 나는 안도했다.
그리고 동시에 생각했다. 인생에 있어 살다가 '끝난다'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적당한 나이에 찾아 오는 것이라고. 예순에서 예순 다섯에 정년 퇴직이 있는 것도 참으로 절묘한 타이밍이다.
정년퇴직이라고하는 '생전 장례식'에는 가장 좋은 나이다. 그후 불과 15년만 어찌어찌 지내면 진짜 장례식이 찾아온다.
남은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은 밑바닥에 떨어진 인간을 얼마나 편하게 해주는 사실인가. 아니, 그 행복은 설령 인생의 밑바닥에 떨어진 인간이 아니더라도 예순이 지난 사람에게는 모두 해당된다. '얼마 남지도 않은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이나 하며 살자' 하는거다.
싫어하는 사람하고는 밥을 먹지 않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는 가지 않고, 인기를 얻으려고 애쓰지 않고, 누가 무슨 말을 하든, 무슨 일을 만나든 '어디서 부는 바람인가?'하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그만이다. 주위에서 무슨 말을 하든지 길게 가지는 않는다. 다 멋대로 불 어 왔다가 사라지는 바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만의 특권이니 참으로 행복한 일이 아닌가? 나는 젊었을 때 비참한 일을 당하지 않은 것에 절절하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344 Page]
지구사는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아내다. 그것은 전혀 거짓이 섞이지 않은 진심 이었지만, 또 없으면 없는 대로 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혼자 사는 것이 이렇게 편하고 개운한 일인지 예전에는 몰랐다.
그렇지만 정말 이혼하고 좁은 아파트에 혼자 살게 된다면 이런 소리도 못 하겠지. 그러나 빈털터리가되기 일보 직전에 그 생활을 받아들이기로 각오 한 지금, 뭔가 묘하게 개운한 기분도 있었다. 아내의눈치를 보지않아도 된다는 것도 그렇다.
결코 자포자기한 것은 아니지만 길을 가다 쓰러져 죽는 것도 꼭 나쁜 것은 아니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혹시 그렇게 된다면 남들은 나를 보고 '고독사'라느니 '엘리트의 종말'이라느니 입방아를 찧 겠지. 그러나 누가 뭐라하든 죽은 나에게는 그것 역시 멋대로 불어왔다 사라지는 바람이다. [345 Page]
"호마, 북풍에 기운다." 무슨 소린지, 어떤 의미인지 모를 말이었다.
"북방에서 태어난 말은 북풍이 불 때마다 고향을 그리워한다."
"그런 말이구나. 너나 나나 북쪽 말이구나."
"건강해라. 놀러 갈게."북풍 속에서 호마는 호마가 내미는 손을 굳게 잡았다. [Page 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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