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발길이 뜸한 산골마을에 세영이라는 열세 살짜리 아들과 엄마가 살고있다.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엄마는 읍내 춘일옥의 유부녀와 정을 통한 것이 탄로나 도망친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다.
함박눈이 툇마루까지 쌓인 어느 날 새벽, 이름도 고향도 알 수 없는 18살의 여자아이가 그 집에 찾아 든다. 아버지를 기다리며 상징적으로 부엌에 달아놓은 말린 홍어를 감쪽같이 해 치우면서..
한적하기만 했던 세영의 집은 불청객 삼례의 등장으로 어머니는 그녀에게 바느질감 심부름을 시키고 활동적인 분위기로 바뀌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떠나버린 삼례와 그녀를 찾아온 사나이의 관계를 정리하며 세영이 아니면 아버지의 기다림도 없이 훨훨 떠나고 싶었던 어머니의 마음을 읽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젖먹이 아이를 없고 나타난 여인은 며칠을 머문 후 아이를 놓아두고 홀연히 떠난다. 아버지와의 사이에서 낳은 세영의 동생 인 것이다.
삼례가 한 일이라고 짐작이 되는 아버지의 귀가는 오랫동안 벽을 쌓고 지내온 외삼촌이 춘일옥 남자와 합의 끝에 이루어 졌다. 아버지가 오기 몇 날 전부터 집안 밖을 꾸미고 닦던 어머니는 정작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다음날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가 버린다.
세영이의 눈으로 본 성장기 소설이다. 읽은 내용을 정리하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내가 읽은 책이 최근에 발간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한국문학전집중 5권으로 2014년 출간된 책이 최근에 나온 책이다. 문이당에서 1998년초판 발행하고 2003년발행한 책으로 읽었으니 제법 오래된 책을 읽은 것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이해를 하기 어렵다거나 하지 않았지만 이야기와 내가 따로 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속의 이야기와 읽는 독자(나)가 하나되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아마도 많은 소설을 읽지 않은 때문일 것이다. 업무와 관련된 서적이나 뉴스는 사실에 기인하지 않으면 글로서의 가치가 없다. 하지만, 소설은 허구와 만들어 낸 이야기가 아니면 그 또한 소설로서의 재미와 가치가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사회생활을 하면서 필요한 글만 읽다 보니 사실이 아닌 글은 잘못된 글이라고 인식되어 왔었던 것 같다.
소설일 읽으려면 그 소설 속의 가상인물이나 가상 환경과 내가 하나되도록 최면을걸어야 할 것 같다. 그 최면은 거는게 아니라 많은 독서 속에서 걸리는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글 속의 서정성이나 시적인 표현은 이곳 저곳에서 공감할 수 있었다. 사물을 표현하는 방법이 역시 글을 쓰는 분들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사실 전달 보다는 감정적인 전달이 필요한 것이 소설이고, 따라서 읽을 때도 그와 같은 감정으로 읽는 습관이 되야 할 것 같다.
겨울을 지낸 송사리 떼들의 경계심은 지진계(地震計)와 같이 예민했다. 재빠르게 헤엄을 치다가도 얼른 스쳐 지나는 사람의 그림자나,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에도 놀라 삽시간에 흩어 지거나 하류 쪽으로 쏜살같이 사라 지곤 하였다. 흐린 날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그해 5월 하순의 햇살은 언제나 아침나절부터 깨진 유리 그릇처럼 눈부셨다. [99 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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