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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03]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루커라운드 2021. 1. 3. 14:39

 

15년 전쯤 일 것으로 기억이 된다. 주말이면 연속극으로 거리가 조용해 질 저녁무렵, 예능 프로그램으로 느낌표에 김용만과 박경림 등이 나와서 독서 캠페인을 벌인 때를 기억한다.

 

그 당시 그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은 흥미보다는 책을 소개하는 시점에서 내가 책을 읽지 못하는 것에 대한 질책(?)을 주는 것 같아 그리 유쾌하게 시청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책은 나에게 계륵이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문화적 중산층이 될 수 없다는 이해할 수 없는 편견에 독서에 대한  컴플랙스가 은근히 내재 되어 있었던 시점이었다.

 

책장 속에 보관 되어있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다시 손에 넣는 순간 그 잊고 있었던 느낌표 프로그램에 대한 기억이 되 살아났다.

 

 

제목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지은이 ; 박완서

펴낸곳 ; ㈜웅진씽크빅

 

박완서 장편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소설로 그린 저자의 자화상 이라고 했다. 1931년생인 작가가 1992년에 책을 내었으니 환갑의 나이에 그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며 쓴 소설이다.

 

저자가 어린 시절을 기억할 수 있는 나이에서부터 1.4후퇴까지 그녀가 살아온 날들에 대한 느낌 주변환경을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묘사를 하고 있다. 고향인 개풍의 적박골에서 어린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된 어머니와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서울로 유학 온 오빠를 뒷바라지하기위해 따라온 서울에서의 유년기, 중고등학교를 다니며 독서와 친구에 대한 기억, 오빠와 엄마 가족들과의 이야기, 고향을 그리워 하는 이야기 그리고 전쟁중 사상과 이데올르기로 혼란스러워진 이야기들이다.

 

소설 제목으로 쓰인 ‘싱아’에 대한 이야기는 세 곳에 언급을 하였지만, 싱아 자체에 대한 설명이나 묘사가 보다는 주변의 상황설명이나 기억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할 때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아카시아 꽃도 처음 보는 꽃이려니와 서울아이들도 자연에서 곧장 먹을 걸 취한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 꽃을 통해서였다. 잘 먹는 아이는 송이째 들고 포도 송이에서 포도를 따 먹듯이 차례 차례 맛있게 먹어 들어갔다. 나도 누가 볼세라 몰래 그 꽃을 한송이 먹어 보았더니 비릿하고 들척지근했다. 그리고는 헛구역질이 났다. 무언가로 입가심을해야 들뜬 비위가 가라 앉을 것 같았다. 

나는 불현듯 싱아 생각이 났다. 우리 시골에선 싱아도 달개비 만큼이나 흔한 풀이었다. 산기슭이나 길가 아무 데나 있었다. 그 줄기에는 마디가 있고, 찔레꽃 필 무렵 줄기가 가장 살이 오르고 연했다. 발그스름 한 줄기를 꺾어서 겉 껍질을 길이로 벗겨 내고 속살을 먹으면 새콤달콤했다. 입 안에 군침이 돌게 신맛이, 아카시아 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 앉히는 데는 그만 일 것 같았다.

나는 마치 상처 난 몸에 붙일 약초를 찾는 짐승처럼 조급하고도 간절하게 산속을 찾아 헤맸지만 싱아는 한 포기도 없었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나는 하늘이 노래 질 때까지 헛구역질을 하느라 그곳과 우리 고향 뒷동산을 헷갈리고 있었다. [89 page]

 

나는 오빠와의 친밀감을 과시하기 위해 멀리까지 가서 조리 풀을 따다가 오빠한테 붙들 게하고 조리를 엮었다. 조리 풀을 뜯을 때마다 습관적으로 먹을만한 풀을 찾았지만, 선바위 주위 척박 한 땅에는 모질고 억센 잡풀 밖에 자라지 않았다.

가끔 나는 손을 놓고 우리 시골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 을까? 하염없이 생각하곤 했다. 말수 적은 오빠도 내 향수를 알아 차리고는 여름 방학이 며칠 안 남았다는 걸 손가락으로 헤아려 보여 주곤했다. [106 page]

 

마침내 개성역이었다. 엄마는 여름 교복을 산뜻하게 차려 입은 아들과 물방울 무늬 내리닫이로 양장을 한 딸을 자랑스럽게 앞세우고 역에 내렸다. 할머니와 큰 숙부 내외가 다 마중을 나와 있었다. 할머니는 나를 안아보고 나서 등을 들이대면서 자꾸만 업히라고 했다. 나는 싫다고 했다. 

고향 산천은 온통 푸르고 싱그러웠다. 고개를 넘고 들꽃을 꺾고 개울물에 땀을 닦으며 여름내 서울을 못 벗어날 서울 아이들은 참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들판의 싱아도 여전히 지천이었지만 이미 쇠서 먹을 만하지는 않았다. [112 page]

 

 

제법 독서의 량이 많은 딸은 책 한권 가지고 전투를 하는 아빠에게 굳이 독후감을 써야 하는지 의문이 가는 눈치였다. 그냥 읽고 느끼고 이해가 안가는 부분은 지나쳐 버리고 물 흐르듯이 책을 읽으면 되지 않느냐는 독서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최근까지 책 읽는 것을 일상처럼 해온 녀석의 방법 이다.

 

그에 비해 난 한권의 책을 읽더라도 요약하여 느낀점을 기록하고 그 책의 구성을 논리적으로 서술 하며, 나아가 그 책에 대한 서평까지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 보았다하지만 마음에서만 우러러 나올 뿐 감히 독후감이라고 글을 써 내기에는 습관되지않은 독서 방법이 너무 오래 방치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도 이해 안된 부분을 이해를 하려 다시 한번 읽어보고, 공감이 가거나 눈에 띄는 부분은 발췌를 해서 기록을 하는 등 마치 숙제를 하듯 책을 읽는 습관을 시도하고 있다.

 

느낌이 오지 않거나 공감된 글을 책에서 발췌를 할 수 없을 때는 다시 되 돌려서 꼭 공감이 가지 않더라도 몇가지의 문장을 꺼내려 노력한다.

 

아직은 책을 읽은 느낌이나 책에 대한 평이 초보적인 단계라고 할지라도 이 짓거리를 멈추고 싶지 않다. 최근의 유튜브에서 최재천 교수의 독서는 '' 이어야만 한다강연을 듣고 나서 더욱 그런 방법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분은 독서는 빡세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빡세게의 의미가 여러가지 있지만 내가 받아 들인 것은 본인이 경험하지 못한 분야의 책이나, 읽어야만 할 책, 그리고 읽기 어려운 책 일지라도 필요하다면 읽어서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들였다.

 

독후감을 쓴다고 하면서 책을 보고 느낀 내용을 정리하거나 서평을 하지 못하고 이렇게 변죽만 올린다. 그래도 이것이 앞으로 좀더 낳은 독후감을 쓰기 위한 밑천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더 큰 문제는 기억의 불확실성이었다.

나이 먹을수록 지난 시간을 공유한 가족이나 친구들하고 과거를 더듬는 얘기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같이 겪은 일에 대한 기억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에 놀라면서 기억이라는 것도 결국은 각자의 상상력 일 따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8 Page 작가의 말 중에서]

 

장군의 복색에 벙거지까지 쓴 무당이 버선을 벗는다. 늘 버선에 옥죄 여서 발가락이 겹쳐진 무당의 작고 흰 발바닥이 작두를 탄다. 나비처럼 자유롭고 무게없이, 평행으로 선 작두 날 위를 훨훨 난다. 그 순간에는 풍악 소리도 극도로 자지러져 마침내 정적의 경지에 이르고 무당의 몸도 소멸하여 흰 나비 두 마리 만 남는다.

그건 굿구경 이라기보다는 내 생애를 통틀어 유일한 신비 체험이었다. 단 한 번 본, 이론으로는 설명할 길 없는 입신의 경지였다. [96 page]

 

내 꿈의 세계 창밖엔 미루 나무들이 어린이 열람실의 단층건물보다 훨씬 크게 자라 여름이면 그 잎이 무수한 은화가 매달린 것처럼 강렬하게 빛났고, 겨울이면 차가운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힘찬 가지가 감화력을 지닌 위대한 의지처럼 보였다.

책을 읽는 재미는 어쩌면 책 속에 있지 않고 책 밖에 있었다. 책을 읽다가 문득 창밖의 하늘이나 녹음을 보면 줄창 봐 온 범상 한 그것들하곤 전혀 다르게 보였다. 나는 사물의 그러한 낯섦에 황홀한 희열을 느꼈다. [158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