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김훈 장편소설)을 읽게 된 계기와 ‘강화도 붉은 아리랑’(구종서 역사소설)을 읽은 계기는 지나고 보니 동일하다.
“강화 나들길”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10여년전이고 길을 걸으며 역사에 대한 작은 이야기라도 함께 할 수 있을까 하여 서점에 들러 강화도와 관련된 책을 구입했었다. 하지만, 생각같이 책을 읽을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10년이 지나 그나마 시간적 여유를 갖고 보니 ‘강화 나들길’의 걷지 못한 구간을 걸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강화의 역사 일부라도 알고 가는 것이 걷는 길에 의미를 더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산성’ 과 ‘강화도 붉은아리랑’은 시대와 역사의 배경에 연관성이 있다. 병자호란으로 인조 임금은 한양을 버리고 강화로 파천하려 했으나, 파죽지세로 몰고 내려온 청나라 군사는 강화로 가는 육로와 수로를 차단하여 뒤늦게 강화로 출발한 어가의 행렬을 남한산성으로 돌리게 만들었다.
세자빈, 세손과 봉림대군, 인평대군 등 두 왕자 그리고 행동이 늦은 원로 대신과 많은 사대부 집안은 일찍 출발을 시켜 이미 강을 건너 강화로 피난을 갔다.
남한산성이 인조왕을 모신 남한산성에서 50여일 동안 뚜렷한 대책없이 척화파와 주화파간 불안한 논쟁들을 벌인 것을 주제로 삼았다면, 강화도 붉은 아리랑은 주어진 세력을 나라와 백성을 위하지 않고 개인의 가족과 자신을 위해 쓰다가 마지막에는 국민을 버리고 도망을 간 김경징을 주축으로 한 주화파와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싸운 황선신을 주축으로 한 강화3충신과 10용사의 이야기가 주제인 듯 하다.
소설로 접한 강화도의 역사적 사건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능력이 없는 권력자들은 국민을 혼란과 죽음으로 몰고가니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의 능력이 중요하다. 부분적으로는 강화도의 지명과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상세히 소개가 되는데, 나머지 길을 걸으며 책에서 언급된 일들을 생각해 볼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한다.
두 차례의 호란은 모두 피할 수 있는 전쟁이었다. 청나라는 당초 조선과 꼭 전쟁을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와의 큰 싸움을 앞둔 청은 조선이 중립을 지켜 명을 돕지만 않는다면, 굳이 조선과 전쟁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대륙 정세의 흐름을 제대로 읽고 현실적으로 대처했다면, 조선은 굴욕과 패전을 막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이 이런 상황을 잘못 처리했다. 인조가 반정으로 집권 한데서 오는 열등감에서 벗어나, 그가 몰아낸 광해군의 실리위주의 대륙 정책을 대범하게 평가하고, 거기서 교훈을 찾으려 했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었다.
광해군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얻은 경험을 교훈 삼아, 명과 청 사이에서 중립 정책과 실리 외교를 써서 나라를 지켰듯이, 인조가 정묘 호란의 경험을 교훈 삼았다면 전쟁을 불러 오지 않았고, 치욕적인 패전도 충분히 피했을 것이다.[264P]
난세에는 노소 부정 (老少不定 ; 죽음에는 노소의 선후(先後)가 없음.) 남녀 무별 (男女無別 ; 남자와 여자의 구별이 없음)이라 했다. 전쟁이나 내란이 자주 일어나는 험악한 세상에서는, 늙었다고 먼저 죽고 젊었다고 나중 죽지 않는다. 남자는 나가서 싸우다 죽고, 여자는 안에서 살아남으라는 구별도 없다.
병자 호란 때의 강화가 바로 노소 부정 남녀무별의 땅이었다. 남자들은 나가서 싸우다 죽었지만, 여자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가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강화 성 함락 이후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 한 여인이 수백 명이었다. 호군들은 여자를 보면 무조건 겁탈하고, 죽은 여자도 옷을 벗겨 시간(屍姦 ) 한다는 소문이 돌았기 때문에, 많은 조선 여인들은 죽더라도 호군의 손이 닫지 못하는 곳에서 죽겠다고 바닷가로 몰려 가서 물속에 몸을 던졌다.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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