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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2] 삶의 한가운데 독후감

루커라운드 2020. 12. 23. 03:16

제목이 멋 있어 보였다. 그래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책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그 만큼 읽어보고 싶었다면 어떻게든 책을 구할 수는 있었다. 독서에 대한 취미가 부족해서 그렇지. 그러니까 거기까지 였었다.

그런 오랜 기억을 되살려 읽었으나 생각보다 멋있거나 격한 감동은 밀려오지 않는다. 책의 내용이 그렇다기 보다는 읽는 사람의 정서나 감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일 것이다. 책에서 감동을 받으려면 읽고 싶을 때 읽어야 할 것 같다. 또한 감정과 상상력이 풍부한, 즉 젊은 시절에 읽어야 더 많은 공감과 감동을 얻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또한 제법 많은 책꽂이에 묻혀 있었으나 몇 달 전 지난번 집수리로 정리 하면서도 다행히 버려진 책들에 포함되지 않았다. 아마도 딸 녀석이 읽고 보관했던 책 같다. 많은 책을 읽는 그 녀석이 읽고 난 책의 외형은 서점에서 갓 구입해온 책과 같다. 깨끗하다는 말이다. 불과 2~3백 페이지의 책을 읽으며 수십 군데 접기도 하고 여기저기 포스트잇을 붙이거나 책의 겉장마저 구겨지는 그래서 마치 그 책과 전쟁이라도 한 것 같이 보이는 내가 책을 대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책을 읽은 후의 감동이 더 클 것 같지도 않으면서..     

“생의 한가운데”로 기억되고 있는 이 책은 생의 정점을 지나지 않은 풋풋한 감성으로 저자가 전하려는 말을 듣고 상상하고 공감을 해야하나, 이제 생의 정점을 지나 이런 저런 세파를 경험한 사람이 읽은 책의 내용은 기대했던 것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기 쉽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지금이라도 그 책을 읽을 마음이 생기고 결국엔 끝까지 읽고 몇 구절 눈에 뜨이는 내용을 발췌 해 냈다는 것이다. 또한, 독서를 하는 힘(?)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한번에 100Page이상을 읽을 수 있었으니,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분량을 읽을 수 있었고, 더구나 읽는 동안 책에 대한 몰입도도 현저하게 깊어졌다. 

단지 아쉬운 것은 책을 읽은 후에 얻은 감동이나 생각이 기대했던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를 쉽게 파악하지 못하는 하여 논리적으로 독후감을 정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제목    ; 삶의 한가운데
지은이 ; 루이제 린저
옮긴이 ; 박찬일 옮김
펴낸곳 ; 민음사

이 책은 주인공인 니나의 삶의 이야기를 20살 연상의 의사이며 교수였던 슈타인 박사가 18년동안그녀의 주변에서 지켜보면서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감정을 일기와 편지를 오랜만에 만난 니나의 언니가 읽으며 니나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쓴 글이다.

주인공은 가난으로 인한 학업의 중단, 외지에서의 친척 할머니를 돌보며 구멍가게를 운영, 병든 신학도와의 일시적인 사랑, 반 나치즘으로의 정치적 개입, 원치 않았던 사랑과 출산 등 인생을 살아가면서 본인의 환경에 따른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이는 전후 독일의 암담한 시대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본인의 의지대로 꿋꿋이 살아가는 삶에서 보여지는 그녀의 생을 성공적으로 그려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다면, 난 알고 싶어요. 죽음은 중요한 일이에요. 죽음을 단 한 번 밖에 경험할 수 없다면 어떻게 의식없이 그것을 받아 들일 수 있겠어요? 도살 당하기 전에 머리를 몽둥이로 얻어 맞는 동물처럼요? 나는 죽음 곁에 있고 싶어요. 이해 하시겠어요?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요. [44 page]

우울에 관해서 생각하고 있었어. 니나는 천천히 말했다. 온갖 아름다움이란 것이 일시적이고 다만 얼마 동안 빌려온 것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 그리고 우리가 인간들 틈이나 나무와 극장과 신문 사이에 있으면서도 마치 차가운 달 표면에 앉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독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사람은 누구나 다 우울하지. [65 Page]

의욕이 없어지면 늙기 시작하는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 아침 무슨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났어. 나는 마치 아침마다 문간에 서서 몸을 쭉 늘이고 바람 속에 코를 쳐든 채 사냥에 대한 욕심으로 몸을 부르르 떠는 사냥개와도 같았어. 그런데 지금, 지금 나에게는 놀랄 일이 없어. 그리고 인생은 끝없이 펼쳐져 있는 풀밭이 아니라, 그 속에서 내가 있는 힘을 다 짜내야 하는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일 뿐이야. [69 page]

그녀는 집시 같은 데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삶은 잠정적이었다. 한군데에 천막을 치고 한동안 살면서 정성을 쏟다가 그곳에 대해 알 듯하면 망설임없이 천막을 거두고 그곳을 떠난다. 그녀의 얼굴에는 야생적 자유에 대한 행복감과 고향 없는 사람의 슬픔이 함께 있었다. [135page]

사람들은 말하죠. 이 사람은 가치가 없고, 저 사람은 가치가 있다고. 그렇다면 여기에서 기준이 되는 것은 뭐죠? 집단 전체에 대한 이익 여부? 이것은 기준이 될 수 없어요. 결코요. 모든 인간은 자기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어요. 그리고 희생자들을 밟고 선 자들은 가치가 있는 자 들인가요? 그들은 생물학적으로 건강할지 몰라요.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가치가 있는 사람이란 말인가요?  [213page]

나 자신도 말을 해놓고 놀랐다. 그럴 것이 전에는 이런 수상한 시대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없는 보다는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233 page]

당신은 많은 힘을 소유하고 있어요. 나는 말했다. 그러나 여성들은 너무 많은 모험을 하면 그 힘을 잃어 버리지요. 니나의 얼굴이 많이 어두워졌다. 그녀는, 그렇다면 나는 살 지 말라는 얘긴가요? 라고 외쳤다. 지금까지 살았는데요? 나는 살려고 해요.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번도 살아 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 갔어요. 한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도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니나는 정말 흥분했다.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렇지 않아요. 행복이 무엇인지 당신은 전혀 몰라요. 그러나 나는 행복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 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얼마든지 나를 부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삶에 대한 당신의 불안이 삶을 사랑하는 내 방식보다 더 부박할지 몰라요. [349 page]

이날 저녁 나는 심한 우울감에 다시 사로 잡혔다. 나는 고독을 뼈저리게 느꼈다. 나는 인간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 있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찾지 않았다 (니나와 알렉산더를 제외하고 나는 어느 누구도 찾은 적이 없었다). 나는 나에게 다가 오려는 어느 누구도 물리 친 적은 없었다. 그렇지만 한번도 그들과 공동체 적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제 나는 어느 누구와도 동행 할 수 없는 길에 나와 앉은 것이다. [366 page]

니나, 그녀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의 절망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큰 재산처럼 부러워하게 만드는 여자. 생을 너무나 사랑 했기에, 생을 너무나 꽉 껴안았기에, 그 생이 자기를 배반했을 때 그 생을 가차없이 버릴 줄 아는 여자. 

 

사실 열심히 살지 않는 자 (?), 생을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찌 노여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자기 목숨을 버릴 수 있겠는가.  가만히 있기보다는 차라리 모험을 택해 전부를 기꺼이 잃으려고 하는 여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던질 줄 아는 여자, 심지어 그 사랑까지 버릴 줄 아는 여자. 늙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여자. 충동과 격정에 자신을 내 맡길 줄 아는 여자. 


니나에 대한 이런 나열은 그러나 화려한 수사에 지나지 않을 줄 모른다. 니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간접 경험이 직접 경험을 따라 가지 못한다. 직접 만나 느껴야 한다. [378 page 작품해설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