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그리스인 조르바는 크레타 섬에 탄광사업을 하러 가는 항구에서 주인공과 조르바가 만나는 장면으로 시작을 한다. 조르바는 이른바 산전 수전을 몸으로 경험한 노인으로 호탕한 성격과 인간의 본능대로 행동함을 주저하지 않는 사람이다. 반면 지식과 이성적인 행동을 추구하고 본능을 제어하며 살아가는 것이 주인공의 삶의 방식이다.
두 사람은 광산 일을 하면서 서로의 방식을 배우고 터득하며 조화를 이룬다.
소설에서 그들의 삶의 방식을 설명하기 위해 조르바가 살아온 과거의 실제 이야기를, 주인공은 그의 친구와의 관계와 그가 지식으로 얻은 이야기를 자주 언급을 한다. 또한, 인간의 본능적인 행동을(예컨대 물욕, 성욕, 그리고 신에 대한 반감 등) 주저하지 않고 행하는 조르바와 달리 종교의 가르침과 사상가들의 이야기 그리고 본능을 제어하는 주인공의 대비된 모습들이 자주 그려진다.
이성적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지만 책을 읽으며 주인공의 행동 자체가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본능을 제어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느낀점]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여행가/지식인/작가/철학가/정치인/혁명가로 폭넓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24세 파리에서 저널리즘으로 활동, 26세 크레타에서 민중어를 채용할 것을 주장하는 솔로모스 협회 이클리온 지부장, 29세 1차발칸전쟁시 육군에 자원, 31세 아토스산 여행시 수도원에서 40일간 머뭄, 34세 펠로폰네소스에서 갈탄을 캐려 시도함, 36세 공공복지부 장관임명, 42세 정치활동으로 체포, 44세 특파원 자격으로 시나이 방문, 45세 군중 앞에 소련을 찬양하는 연설을 하고 소련으로여행, 51세 돈을 벌기 위해 교과서 편집, 59세 정치에 입문, 62세 좌파를 통합하는 소수세력인 사회당의 지도자가 됨, 크레타에서 연립정부의 정무장관으로 입각, 63세 그리스 정치 상황으로 해외체재가 불가피해짐, 64세 유네스코에서 일함, 71세 저서 ‘최후에 유혹’이 카톨릭교회의 금서에 올라감, 73세 빈에서 평화상 수상, 74세 일본을 경유하는 중국 방문 이후 사망
이렇게 다양한 이력이 나에게 그런 인식을 심어 주었다.
480Page에 달하는 그리스인 조르바(열린책들 출판)를 읽기 위해 책을 구한지 삼년은 족히 넘은 것 같다. 지금껏 접한 책들에 비하면 많은 분량의 페이지 때문에 끝까지 읽지 못하고 읽다가 중단하기를 서 너 차례 번복 했던 책이다. 그냥 마음이 끌리는 대로 그리고 손 닿는 대로 읽고 덮어놓고 해도 될 것 같은 책 읽기를, 마치 중요한 의식을 치르듯이 매번 첫 페이지부터 진지하게 읽어갔었다.
이번에는 저녁을 먹고 실내 골프장의 사람들이 운동 마치기를 기다리는 동안 약 한 시간 반을 정독을 하였다. 하루 50페이지를 읽었으니 열흘 정도 소요된 것 같다. 결국 마지막 장까지 다 읽었다. 버킷리스트의 하나인 은퇴 후 취미, 독서에 성큼 다가선 듯한 자신감이 들었다.
어느 지면에서인가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라는 니코스 카잔차키스 묘비명의 글도 글이거니와 그리스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는 것이 이 책을 끝까지 읽기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이다.
그리이스인 조르바의 소설 배경은 그리스 본토와 아프리카 사이의 크레타 섬. 오랜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읽었던, 그래서 내게 책 읽기에 대한 작은 성취감을 준 이 소설을 읽었으니 언젠가는 크레타로 여행을 꿈꾸어 본다. 우선은 그곳의 경치를 보고 싶고 소설 속에 묘사된 장소를 찾아 온전하게 소설을 이해하며 느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특히 그들이 묵었던 마을과 광산, 수도원과 섬의 해변 그리고 조르바를 처음 만났던 피레아스 항구를 돌아보고 싶다. 소설을 읽고 배경이 된 지역을 여행하는 것에 대한 꿈을 꾸던 내겐 최적의 소설이자 여행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상 깊었던 글]
이따금 이 사람은 야만스러운 노래도 부르는데, 듣고 있노라면 우리 삶이 아무 색깔도 없어 보이고 비참하게 보이고 덧없이 느껴져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아 진다네. 그러다 그가 애조 떤 노래를 부를라치면 인생이란 손가락 사이를 빠져 나가는 모래처럼 구원의 여지가 없을 것 같은 기분도 든다네. [카잔차키스가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조르바에 대한 이야기] -134P
공자 가라사대, <많은 사람은 자기보다 높은 곳에서, 혹은 낮은 곳에서 복을 구한다. 그러나 복은 사람과 같은 높이에 있다> 던가. 지당한 말씀! 따라서 모든 사람에겐 그 키에 알맞은 행복이 있다는 뜻이겠네. 내 사랑하는 제자여, 스승 이여. 이즈음의 내 행복도 그렇다네. 나는 내 키 높이를 열심히 재고 있다네. 자네도 알겠지만 사람의 키 높이 란 늘 같은 게 아니라서 말 일세. 인간의 영혼이란 기후, 침묵, 고독, 함께 있는 사람에 따 라 눈부시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네! [카잔차키스가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134P
그의 시는 핏기도 없고 냄새도 없고 인간의 본질을 비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처음 경험 한 느낌 이었다. 그의 시가 창백한 진공 속의 공허한 언어로 보였던 것이다. 박테리아 한 마리 없는 완벽한 증류수였지만 영양분 역시 하나 없는 물 같은 것, 요컨대 생명이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카잔차키스가 말라르메의 시를 읽으며 느낀점] -195P
신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구원해야 한다고 주장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에필로그에서] -445P
여행과 꿈이 상호 작용을 통하여 늘 그의 삶을 풍부하게 하듯이, 영혼과 육체는 변증법적 상호 작용을 통해 그의 존재를 드높이는 것이다. [에필로그에서] – 446P
새끼 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 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 손가락이 자꾸 거치적 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 쳐 잘라 버렸어요.
하느님요? 자비로 우시고 말고요. 하지만 여자가 잠자리로 꾀는데도 이거 거절하는 자는 용서하시지 않을걸요. 거절당한 여자는 풍차라도 돌릴 듯이 한숨을 쉴 테고, 그 한숨 소리가 하느님 귀에 들어가면, 그자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쌓았대도 절대 용서하시지 않을 거라고요.
도 닦는 데 방해가 된다고 그걸 잘랐어? 이 병신아. 그건 장애물이 아니라 열쇠야, 열쇠.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 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1 천 번, 아니, 3 천 번쯤 될 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 하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대경 확 부숴 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 질러 버리시구려,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조르바의 어록] – 458P
관련자료를 찾아 보다가 IT조선의 디지털치매를 예방하기 위한 ‘#하루천자 쓰기’ 캠페인을 보았다. 매일 천자 분량의 필사거리를 보면서 노트에 필사하고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 하는데, 평소 필사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 잠깐 따라 해 보았다. [출처]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0/2020032005213.html
'책읽기.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0.05.28] “바람처럼 구름처럼” 이휴재 수필집 (1/2) (0) | 2020.05.29 |
---|---|
[2020.05.27]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독후감 (0) | 2020.05.28 |
[2020.05.08] 절망의 끝자락에서 희망의 싹을 기대 해 봅니다. (0) | 2020.05.08 |
[2020.05.01] 독서 습관 (0) | 2020.05.02 |
[2020.04.30] 리더(결정권자)의 어려움 (0) | 2020.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