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 역자 : 박은정 문학동네
[줄거리 및 소감]
전쟁 이야기 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전쟁영화나 전쟁 이야기는 남자군인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영웅적인 주인공이나 전략으로 인하여 성공적으로 수행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여자들이 등장을 하지만 그들은 전쟁의 주역인 남자군인들을 돕는 역할 그리고 전장에서 일어나는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정도일것이다.
이 책은 여자군인이 200만명이상 참여했던 2차세계대전중 여성의 눈으로 본 전쟁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대화한 내용을 글로 쓴 소설이다. 소설이라고 하지만 마치 누군가 이야기 하는 것을 정리하여 글로 옮겨 놓았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저자는 이 소설에 적용한 ‘목소리 소설’이라는 장르를 창시했다고 한다.
주로 경험한 이야기들을 듣고 정리하여 논픽션의 형태로 쓰여졌지만 마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정리하다 보니 비슷한 류의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지루하게 느껴 질 때도 있다. 또한, 많은 전쟁영화에 비하여 소소하고 세밀한 부분들이 자주 보여지기 때문에 극적인 잔인함과 웅장한 느낌은 받지 않는다. 실체를 들여다 보면 인간으로서 겪기 힘든 고통과 잔인함이 극에 달 할 때도 있지만.
전쟁에서의 승리가 남자들만의 것이라는 인식 때문에 여자들에 의해 성공의 바탕이 된 부분은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을 숨기고 싶어하는 그룹들에 의해서.
책에서 얻고자 했던 유용한 문장이나 가슴으로 와 닿는 느낌을 얻을 수 없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제법 부피가 나가는 책을 끈기로 읽기를 마친 것에 대한 뿌듯함은 남아있다.
[책 내용 중에서]
고통은 남루하고 힘겨운 우리네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한다. 아픔, 그건 우리에게 하나의 예술이다. 우리 여자들이 바로 이 아픔과 고통의 길을 향해 용감하고 당당하게 나아갔음을 나는 밝혀야 한다. [20P]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것을 기억 속에 담는다.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읽고 보았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기억 속에 모두 저장되어있다. [24p]
제 3의 인물이 동석하면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와 단둘이 있을 때보다 덜 진실 해지고 덜 솔직해진다. 이미 대중을 의식한 대화가 돼 버린다. 관객을 위한 대화, 당사자의 솔직한 감정과 생각을 얻어 낼 길은 요원해진다. 강력한 자기 방어에 부딪친다. – 중략 -
청중들을 위한 또 하나의 전쟁을 그녀는 준비해 두었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전쟁과 똑 같은 전쟁을. 신문에서 떠드는, 영웅과 공훈이 주인공인 전쟁. 젊은이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훈육용의 전쟁. 평범하고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 불신에, 보통의 삶을 소위 이상이라는 것과 슬쩍 바꿔치기 하려는 이욕망에 나는 매번 충격을 받았다. 평범한 온기를 차디찬 광채와 맞바꾸려는 욕망에. 나는 우리가 부엌에서 함께 차를 끓여 마시던 그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가 함께 눈물 흘렸던 그 기억을. [188P]
부드러운 어린애의 모습이 확신에 차, 심지어 어느 정도는 모질고 엄하게까지 보이는 여인의 눈빛으로 변해 있던 얼굴. 그 몇 달, 그 몇 해 사이에 그런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보통의 시간은 그렇게나 빨리 그렇게나 몰라보게 사람의 얼굴을 바꿔 놓지 않기 때문이다. [285P]
"내가 전쟁터에서만 예뻤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 그곳에서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이 지나가 버렸어. 다 타버렸지. 그러고는 순식간에 늙어 버렸어.”[338P]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승리…
예전엔 그들에게 삶이란 평화와 전쟁으로 나뉘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네들에게 삶은 전쟁과 승리로 나뉜다. 또다시 두 개의 다른 세상, 두 개의 다른 삶이다. 기껏 증오하는 법을 익혔는데 다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오래전에 잊힌 감정들을, 잊힌 말들을 다시 떠올려야 했다. 전쟁의 사람이 전쟁의 것이 아닌 사람이 되어야 했다.[511p]
'남자'의 전쟁이었다. 여자들 역시 전쟁의 당사자이자 가장 큰 피해자 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들 입장에서의 전쟁은 그 누구도, 심지어 여자들 자신조차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여자'가 겪고, '여자'가 목격한, '여자'의 목소리로 들려준 '여자'의 전쟁을 이야기한다. 그건 전쟁에 대한 다른 수많은 책들이 말하지 않았거나 간과 한 탓에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알았더라도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전쟁의 새로운 얼굴이다. '여자'의 전쟁은 전쟁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통념을 깨뜨린다. 우리가 알던 전쟁보다 '더 현실적이고 더 잔혹하며 더 실제적'이다. - 중략 -
그네들은 숭고한 이상이니 승리니 패배니 작전이니 영웅이니 따위를 말하지 않는다. 그저 전쟁이라는 가혹한 운명 앞에 선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들려 줄 뿐이다. 여인들은 전장에서도 여전히 철없는 소녀였고, 예뻐 보이고 싶은 아가씨였고, 자식 생각에 애간장이 타 들어가는 엄마였다. - 중략 –
우리는 자신이 편안하고 안락할 수만 있다면 타인의 고통과 아픔 따윈 아랑곳하지 않는 냉혹한 야만의 시대를 살고있다. 비인간적이고 불의한 것과도 기꺼이 손을 잡고 타협하는 비겁의 시대. 헤세는 일찍이 이렇게 일갈했다. "전쟁은 우리들 모두가 지나치게 게으르고, 지나치게 안이하고, 지나치게 비겁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탐욕과 교만, 그리고 폭력과 야만에 눈감아 버리는 비겁함이 사라지지 않는 한, 전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번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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