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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30] 리더(결정권자)의 어려움

루커라운드 2020. 4. 30. 17:43

정부의 재난지원금 정책을 비롯하여, 복지정책 그리고 예산 사용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불안감을 느꼈다. 남미의 콜롬비아나 아르헨티나 그리고 유럽의 그리스처럼 포퓰리즘 정책으로 미래가 걱정 되는 것은 기우일까? 현재 내가 보고 듣는 내용만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정리하려 하니, 그 동안 정치나 경제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관계로 제대로 표현을 하기 쉽지 않았다. 앞으로 폭넓게 사회를 바라봐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하며 몇 번을 썼다가 고치고 아직도 미흡하게 정리된 글을 올려본다    

2주전 선거에 대한 결과, 그리고 이후 여당과 야당이 이견을 보이기 시작한 긴급재난 지원금 지급방법, 추가경정예산에 대한 대립 등을 보면서 정치를 한다는 것과 어떤 집단을 리드해 나가기 위해 시시때때로 결정을 해야만 하는 결정권자의 어려움에 대한 생각해 보았다 

불과 한해 전까지만 해도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었다. 내가 노력한 대가로 내 등 따시고 내 배부른데 누가 정치를 하던 공공근로 등 효율성 없는 일자리를 만드는 정책을 만들던, 그리고 여당과 야당의 원내비율이 바뀌든 알게 무엇이냐, 라는 심사에서였다. 그 저변에는 가끔씩 들려오는 매스컴에서의 정치인에 대한 부정적인 보도의 영향이 컸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매스컴에서는 왜 한사코 그들을 부정적으로 보도를 했는지, 나는 그 보도에 대하여 얼만큼 생각해 보았는지,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일상이 정말로 그것과 한치의 관련도 없는 것인지 한번쯤은 반문을 했어야 한다 

재난 지원 대상이 하위소득 70%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소식과 고용대란으로 10조를 투입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까지만 해도 평소의 생각대로 당리 당략으로 싸우는 정치인들의 습관적인 행태로 치부 해 버렸다. 

그런데, 얼마 남지 않은 내 경제활동과 수입이 끊긴 이후 남은 여생을 위해 세금이라는 명목으로 지속적인 비용을 지불 해야 하며, 그 비용은 수입이 없더라도 온전하게 나의 주머니에서 지출이 되어야 된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부터 노후자금 운영에 이상은 없는지가 궁금해 졌다. 코로나 사태로 사회전반적인 경제가 위축될 것이라는 소식이 그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한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이끌고 간다는 것이 당연히 쉽지 않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 한다고 공공인력이나 공무원을 늘리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일구어 얻은 대가(세금을 포함하여)에 슬며시 숫가락을 올려 놓는 행위는 정당하게 일을 하고 대가를 받는 사람까지도 의욕까지도 저하시킬 것이다. 

월급쟁이로서 지금까지 낸 세금에 대해서 아깝거나 그 세금의 사용처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을들어 부정적인 생각을 한적이 없지만, 최근에 그 혜택을 생색을 내듯 쓰여지거나, 관리가 되어지지 않는다거나, 충분한 검토 없이 정책을 만들어 효율 없이 쓰여지며, 더욱 심기가 불편한 것은 마구잡이로 나누어 주는듯한 느낌을 받게 만드는 복지정책이다. 

노력을 했으나 운이 없는 사람, 절대적 사회빈곤층에 대한 지원, 진정으로 국가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에 대한 예우, 공공을 위한 사회 활동비, 뜻하지 못한 장애로 사회활동이 불가능한 사람들에의 지원. 내가 내는 세금은 이런 사람들에게 지원이 되어져야 한다. 

고용보험으로 여행을 하기 위해 최소기간을 일을 하고 퇴직을 하는 사람들, 고용보험을 을 수령하여 돈이 떨어 질만큼 외국 여행을 한다는 기사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나와 관련 없는 일이니 신경을 쓰지 말아야 하나? 추구하는 가치가 틀리니 나와 다른 생각일지라도 존중해 주어야 하나? 아무리 현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미래에 대한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골라내지 못하고 지원해 주는 정책을 보면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점점 늘어나는 국가의 빛을 생각하지 않고 얄팍한 심리로 국민들의 민심을 얻기 위한 정책은 진정한 리더라면 심사 숙고 해야 할 일이다. 비약적인 기사 제목이지만 코로나 지원금 100만원 받지만빚은 920만원 는다.”는 중앙일보의 기사를 보면서 증가하는 국가의 빛은 누가 언제 값아 야 할 것인지 걱정도 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며 나라에 특혜를 달라고 한적도 없고 특별히 특혜를 받지도 않았다고 생각을 한다.

물론운이 따랐기에 인생에 커다란 굴곡이 없었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운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면 불이익을 받지 않은 것 만으로도 특혜와 다름 없다고 할 수도 있다. 만약 그렇게 비약하여 생각을 한다면 정말 우리가 특혜를 보았다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떻게 말할 것 인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는 내가 움직인 대가로 살아온 평범한 인생이라는 것이다. 

젊은 세대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급격한 경제발전에 자의든 타의든 동참했던 기성세대들은 어느 정도 자산을 축척해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 노후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는다. 이미 어렵고 힘든 시절을 경험해 왔기에 기초생활이 흔들릴 정도나 죽을 만큼 힘든 상황 - 나이가 들어 체력적인 어려움이 있거나, 일하기 싫다손 치더라도 이라면 생활 전선으로 다시 뛸 의지가 있다.

정 아니다 싶으면 삼시세끼 고기 먹을 것을 한끼로 줄여 먹던지, 고기 먹을 것 쌀밥 먹거나, 쌀밥 먹을 것 분식과 혼식을 하면 굶지는 않을 것 같다는 비유의 말이다. 해외여행 3번갈 것 1번으로 줄이거나 국내여행을 가면 될 것 이다. 

하지만, 계속 늘어나기만 하는 국가 빛은 결국 누가 값아야 하나? 

지금의 상황이라면 진정으로 고통을 받게 될 세대는 갓 대학을 졸업하고 아직도 불확실 한 앞날을 걱정하고 있는 사회 초년생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바로 우리 아들 딸 들이니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