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우랄리에서 안나프르나 산군과 작별을 하고 나니, 주변의 풍경들이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열대 원시림을 연상케 하는 계곡과 높은 산들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안나프르나와 비교하면 보잘것없어 보였다.
아니 그 풍경들을 눈여겨보려 하지도 않았다
가끔 나타나는 롯지에 간식거리를 먹고 쉬면서 이제 하산을 준비한다.
올라온 것 만큼 내려가야 하니 자칫 지루한 느낌도 들었으나, 간두룩의 고산지대 마을이나 킴체 그리고 사우리바자르 지명을 떠올리며 또 다른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기대는 버리지 않았다.
오늘은 타나파니에서 숙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조금 일찍 산행을 마치고 싶다는 의견과 그로 인해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는 풍경을 건너뛰지 않는다고 하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이제는 체력이나 고산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지리산의 한 자락을 걷듯 능선을 지나 계곡에 떨어지거 다시 능선으로 오르기를 너덧 차례 지나 조금 이른 시간에 바이시카르카에 여유롭게 숙소를 잡는다. 이곳 역시 조금은 한적한 때문에 택했던 숙소이며, 그를 증명하듯 모든 이들이 이곳을 뒤로하고 간드룩으로 이동을 하였다. 칠십이 가까운 노부부며, 한무리의 중국 여행객들 그리고 조랑말을 타고 여행하는 또 다른 여행객 까지..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지 자정이 다 되어 잠시 잠이 깨어 소변을 보고 오니 갑자기 집 생각이 난다.
그러고 보니 뉴델리 이후 나흘째 집과의 연락이 끊긴 상태다. 나의 길만을 생각하고 내가 닥칠 어려운 것만을 생각하다 보니 집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 앞으로 남은 길들이 눈에 보이는듯하니 집생각이 밀려오고 그로 인하여 잠이 오질 않았다. 일단 생각이 그리로 가기 시작하다 보니 이런 저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아이들이나 집사람은 그나마 젊으니 그렇다 치고, 항상 머릿속을 오가는 팔순이 넘은 노모가 혹시 내가 연락이 안되는 시점에 잘못된다면??
어차피 인생이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연락을 할 수도 없는 난감한 상황이 도래한다면 그땐 난 내가 한 행동에 대하여 깊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그 긴 시간들..
고라파니에서 저녁을 기다리며 전화서비스를 제공하는 그곳에서 전화라도 한번 해야 한 건 아니었나?
밤새 잠을 설치고 이른 새벽, 일찍 출발을 약속했던 동행 할 가이드와 마추쳤다.
그가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을 이용하자는 것도 오늘 새벽잠이 오지 않는 와중에 이런저런 생각 끝에 끄집어 낸 것이다.
다짜고짜..카투만두의 한국인 숙소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달라고 하니 의아해한다.
헌데 조금 낮은 곳에 위치해 있던 그 숙소에서는 무선전화기가 터지질 않는다고 한다.
조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기는 것을 보면서 그 가이드는 갑자기 서두르는 나의 행동을 의아해한다.
한 시간 정도 산행을 하여 고도가 높아진 지역에 다다랐을 때 그는 전화기의 안테나가 통화를 할 수 있을 만큼의 위치에 와 있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슨 일이냐고 물었을 때 난 그 사장님께 우리 집 전화를 알려주고 난 별일 없는데 혹시 집에 별일이 없는지 물어보아 나에게 결과만 가르쳐 주면 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자 그는 그냥 국제전화를 하면 될걸~~ 하면서 조금은 황당해하면서 전화기의 버튼을 눌러준다.
끊길 듯 이어지는 집사람의 목소리에서 뭔가 잘못된듯한 목소리를 잠시 듣고는 전화는 다시 불통이 되었다.
조금이라도 높은 바위 위로 위치를 이동하여 다시 연락이 닿았을 때..그녀가 한 말은
"당신은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어찌 집에서 기다리는 사람 생각은 하지도 않고 산속으로 들어가 며칠 동안 연락도 없었느냐?"
는 핀잔이다. 혹시 어떻게 되었는지 몰라 애를 태우고 있었다고 한다.
그도 그렇지.. 뉴델리에서 집으로 전화한 이후 카투만두에 가면 다시 통화하겠다고 전화기 속에 말을 흘려놓고 그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통화하지 않았으니 내가 걱정하는 것 이상으로 집에서도 걱정으로 했던 것이다.
그런 푸념이라도 듣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한편으로, 과연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쳐가면서 이렇게 행동하는 것이 더무모한 행동이 아니었는가 하는 자책감을 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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