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등산·여행)

[2005.06.26] 지리산 주능선 종주기 - 3

루커라운드 2005. 6. 26. 03:00

 

 

 

     지리산종주기(1)가기
     지리산종주기(2)가기

 

 

얼마동안 인가 자다가 깨어 시계를 보니 새벽 두시...평소처럼 여섯시간 잠을 잔 것이다. 몸은 좀더 잠을 원하는 것

같은데 소변을 보고싶은 건 참을 수가 없었다. ~두팀이 배낭을 꾸리는지 웅성거라는 모습을 보며 화장실로 향한다.

 

새벽 두시정도에 천왕봉으로 향하면 일출을 볼 수 있느냐고 산장 관계자에게 물어본다.

가능은 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일출을 보아야 할지는 물어보는 사람의 판단이라고 한다.

 

다섯시가 되기 전에 일출을 보러 출발한다면 촛대봉에서도 일출을 볼 수 있을 터인데 시간에 쫓기는 산행이 아니라면

굳이 어두운 산길을 헤쳐가면서 까지 천왕봉의 일출을 보아야 겠느냐는 말로 들린다.

 

하긴...그렇기도 했다.

두시에 깨어버린 잠이 다시 잠으로 이어질까? 지금 천왕봉으로 출발할 수있을까?

두가지 생각을 동시에 하면서 다시 산장의 침상으로 가 십여분만에 잠속으로 다시 빠져들어간 것 같다.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많았나보다.

 

잠을 깬 시간은 다섯시 이십여분, 이미 산행을 하려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식사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거나

목적지를 향해 출발을 했다.

 

코펠에 어제 저녁 식수로 받아온 물로 라면 하나를 끓여아침식사를 마친시간이 불과 십오분, 라면 한 가락도없이

국물까지 모두 마시고, 휴지 한장으로 코펠을 닦고나니 설걷이를 할 필요도 없이 깨끗해 졌다.

 

그래도 식수대로 가서 맑은 물로 한번 헹구어 낸 다음 식수를 충분히 보충하고 촛대봉으로 향한다.

강하지 않은 아침 햇살이 맞은편 영선봉의 봉우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발이 제법 무거웠다.

집에서 집사람이 챙겨준 물파스...모기에 물리거나 오래 동안 걸으면 필히 자기전에 바르라고 넣어준 물파스 가

생각이 나질안아서는 아니었는데, 약을 바르지 않는 습관때문에 어제밤에 그냥 잠자리에 들었는데...

가벼운 후회감이 스칠 정도로 다리가 무거웠다.

 

덕분에 촛대봉으로 가는시간은 어기적어기적..느릿느릿..세석산장을 뒤돌아보고 세석평원을 이잡드시 두리번거리며

삼십분정도를 소모하며 촛대봉에 오른다.

 

촛대봉에서 천왕봉 올려다보니, 역시 엳게낀 안개로 인해 형체만이 아스라이 나타난다.

초등학생형제로 보이는 아들 두명을 거느린 가족네명, 그리고 게맛살로 "천왕봉을 바라보면서 호연지기를 느끼겠다"

(그들이 한말을 슬적 훔쳐 듣고 옮기는것 임) 이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두 남녀, 그리고 때늦은 숙제검사를 받기위해

늦은새벽 천왕봉을 올려다 보려는 중년의 한 남성 이렇게 일곱명이 천왕봉뒤로 비춰오는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작은 포터불 삼각대를 가지고 다닌다.

나 개인의 인물사진을 찍는 경우가 드물었지만 이번 산행은 산행의 목적이나 분위기로 보아 몇장의 산행사진을

남기리라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호연지기를 누리던연인중 청년이 가족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자처하는 터라 나도

서슴없이 독사진을 한장 부탁한다.

 

연하봉을 거쳐 장터목으로 가는 중간에 촛대봉에서 본 가족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다.

가만히 기억을 해보니, 어제 저녁 세석산장에서 식사를 마치고 여유롭게 산중기운을 느끼고 있을때,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산장에 도착하는 어린이와 그뒤를 따르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은 땀을 많이 흘렸는지 얼굴에 옅게 흙이 묻어있었다고 지친 모습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페트병 큰것을 두개를 주며 식수를 받아오라고 눈짓을 하는 것 같았다. 힘은 들어 보였지만, 어린이의

외형에서 평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리를 절며 식수대로 가는 아이의 모습에서 대견함을 볼수 있었다.

 

헌데 오늘 나보다 일찍 출발한 그들의 어깨 위 에는 내가 메고 있는 크기 정도의 배낭이 걸려있었다.

엄마 아빠는 그들의 배낭에 눈길도 주지를 않았다. 당연하다는 표정으로...아마도 제대로 산행을,

아니 사회를 살아 가기 위한 훈련의 정도를 배우고 있는것 같이 보였다.

 

당연 그들의 표정에서도 귀찮거나 짜증난 표정은 보이지 안았다.

동행을 하며, 오산에서 차를 가지고 성삼재로, 그리고 나와 비슷한 시간에 성삼재를 출발해서 예까지 왔다는 말을

듣고는 어설피 동지애를 느낀다.

 

장터목에 도착한시간은 오전 여덟시가 다되어서였다.

식사를 하는 사람들과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로 산장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취사장의 한쪽 구석에 배낭을 놓고 십여미터 산아래 식수대로 가 차가운 물을 한병받고,

수건을 물에 적신다음 카메라를 들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아직도 고사목을 보면서 장터목을 잊지 못하는 것이 이십여 년전 회사 산악회에서 단체로와서 천왕봉을 오르며 기억나는

사물하나... 그때...고사목 사이사이를 빠져나가며 산행을 했었는데, 이제는 생태계보존을 위해 지정 등산로를 만들어

길을 유도해 놓고 있었다.

 

제석봉을 지나서 천왕봉에 오른다.

중산리에서 올라오는 사람들과 장터목에서 오른 사람들로 토요일  오전임에도 제법 사람들이 많다.

한 무리의 일본어를 쓰는 중장년의 팀들이 일본어를 섞어가면 이곳 저곳에 손을 대며 "터치~~터치~~"를 연발하며

산정상을 배회한다.

 

장터목산장이 있음직한 곳으로 옅은 구름의 무리들이 스치듯 지나간다.

산정상에서는 단체사진, 독사진 을 찍으며 정상에 오른 증거를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노고단 쪽을 향하여 세워진 안내판을 들여다 보니 어제, 오늘 내가 지나온 곳이 파노라마로 찍혀져 있었다.

 

장터목 대피소로 내려오며 제석봉에 몇장의 고사목을 사진에 담는다.

메모리 혹은 밧데리가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정표가 나타나는 곳에 선 화소를 낮추어가면 기록을 했건만,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서인지 아직도 많은 량의 메모리가 남아있었다.

 

하산을 한다. 장터목에 도착하여 배낭을 메고 백무동으로 향한다. 무릎이나 발목이 불편하진 않았다. 내리막 길이다.

 

이제 두어 시간만을 투입하면 목적하는 곳에 다다를 것이다.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코스는 지리산행중 가장 특징이 없는 코스가 아닐까 생각된다.

 

샘터를 지나는 중에 아침에 만난 가족 산행팀중 아버지와 작은 아들을 지나친다.

동생은 이미 다리가 풀린 듯 했다. 계단을 내려설 때는 다리를 구부리고 어정쩡하게 내려선다.

 

그럼에도 제법 큰 배낭은 여전히 그의 어깨 위에 걸려 있었고, 두어걸음 뒤에서 그를 따라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제삼자인 나로서는 운동선수를 훈련시키는 감독의 모습을 연상시켜 때아닌 미소를 짓게 한다.

 

그들을 앞질러 오분정도 내려 왔을 때 그들의 또 다른 가족인 엄마와 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난 한마듸 건네지 안을 수 없었다.

 

"넌괜찮아 보이는구나. 동생은 아마 다리가 플린 듯 보어던데.."

 

엄마와 아들은 걱정보다는 작은시간이나마 같이 산행하며 만났던 나에게 웃음으로 답례를 해보이고 있었다.

 

이틀동안 산행으로 땀에 절은 옷을 입고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계곡에는 가믐으로 인함인지 많지않은 양의 물이흐로고 있었지만, 몸을 닦기에는 충분했다.

수건에 물을 적셔 어깨, , 배 무릅이며 이곳저곳에 배인듯한 땀을 닦아내고 머리를 감는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며 그동안 답답해했을 발을 식히며 삼십 여분을 계곡에서 물과 씨름하다가 옷을 갈아입고..

산을 내려온다.

 

백무동 매표소에서 산으로 조금 들어온 지점에는 나무의자와 탁자가 휴식을 위해 놓여있었고,다행히도 하산하며 만났던

그가족은 산행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후 한시 반이 조금 넘었다.

함양을 거쳐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는 두시 오십분에 있었다.

표를 끊고 간단히 식사를 할 곳을 물어 바로 뒷편 산기슭에 식당을 알려준다. 비빔밥을 시키면서 맥주도 한병 주문을 한다.

밥이 나오는 새를 참지 못하고 맥주를 독촉하니 아주머니는 손에 물기를 닦으며 나물 한 종지와 차갑게 냉동이 된

맥주를 컵과 함께 내온다.

 

~~ 생전에 이렇게 시원하게 맥주를 마셔본 적은 없었으리라 삼홉 한병의 맥주가 단숨에 목안으로 흘러 들어간다.

 

잠시 후 나온 산채 비빔밥은 투박하게 보일 만큼 큰 그릇이 나물과 밥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필히 덜어 놓았을 법도 한데, 연신 비벼가면서 순간순간 가득 채운 밥숫갈을 입으로로 가져가는 것이

내가 나를 보아도 너무 게걸스레 먹고 있는듯 보였다.

 

 

그렇게 행복한 식사를 마치고 나니...맥주기운과 포만감과..안도의 한숨이 몸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아직도 영혼은 지리의 어느 골짜기에서 빠져 나오지 않은듯한 기분으로~~~

 

버스에 오른 후  죽암 휴게소에서 소변을 보려 한번 깬 것 말고는 서울에 도착하는지도 모를정도로  곤한 잠에 빠져들었었다.

 

   < 촛대봉에서 올려다본 새벽의 천왕봉 - #1 >

   < 세석과 영신봉 - #2 >

   < 세석에서 장터목으로 오는 길 - #3 >

   장터목 산장 - #4 >

 

 

   < 천왕봉 중턱에서 - #5 >

   < 천왕봉에서 노고단쪽으로 본 운무 - #6 >

< 천왕봉에서 노고단쪽으로 본 운무 - #7 >

 

 

[제석봉 고사목] - 안내문에 적힌글 -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고 무상의 세월을 말하는 이 고사목 군락지에 얽힌 내력은 아래와 같다.

"30년 전에는 숲이 울창하여 대낮에도 어두울 정도의 청년같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려 불을 질러 그 불이 제석봉을 태워 지금처럼 나무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

 

탐욕에 눈먼 인간이 충동적으로 저지른 자연파괴행위가 이처럼 현재까지 부끄러운 자취를 남기고 있다.

 

 

 

 

   < 제석봉의 고사목 - #8 >

   < 제석봉의 고사목 - #9 >

   < 제석봉의 고사목 - #10 >

   < 제석봉의 고사목 - #11 >

     < 제석봉의 고사목 - #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