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이 같은 책 두 권 중 왜 큰 글자 책으로 발간된 책에 손이 갔는지 알 수 가 없었다.
안경을 벗고 글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다면, 아직은 웬만한 글자체의 책을 읽는다는 것이 그리 불편하지는 않다.
책의 뒷장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본 도서는 문화체육관광부(도서관 정책기획단)가 주최하고 (사)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2022년 큰 글자책 보급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 코드 위로는 “비매품”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본문의 첫 장을 여니 눈에 들어오는 글자가 낯설다. 글자가 너무 커서 글의 내용이 집중되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글자의 크기가 적응되어가고 책장을 넘기는 속도는 빨라져 갔다.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않으며 두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있는 노인의 옆얼굴을 나는 살핀다.
대체 얼마나 오래 이렇게 서서 기다리고 있는 걸까. 지팡이를 짚은 맨손이 시리지 않을까. 시간이 거의 흐르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가게들이 문을 닫은 이 적막한 읍에서, 살아서 숨을 쉬는 것은 이 정거장에 서 있는 두 사람뿐인 것 같다. 문득 손을 뻗어 노인의 흰 눈썹에 맺힌 눈송이를 닦아 내주고 싶은 충동을 나는 억누른다.
내 손이 닿는 순간 그의 얼굴과 몸이 눈 속에 흩어져 사라져버릴 것 같은 이상한 두려움 을느낀다. – 153Page
네거리 신호등의 불빛이 더 밝아 보인다. 그 불빛 앞으로 떨어지는 눈송이들에 더 선명한 색채가 번진다. 날이 저무는 것이다. – 157Page
무의식 적으로 큰 글자 책을 택한 이유를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었다. 나도 적당히 나이가 들었다고 스스로를 판단하였고, 일을 그만두기 전에는 독서 습관이 되어있지 않으니 글자가 커서 페이지 당 글자 수가 적은 책을 택하여 조금이라도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었던 심리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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