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등산·여행)

[2022.01.02] 남도 사찰 기행 (떠나기 전에)

루커라운드 2022. 1. 2. 01:33

유홍준교수는 그 많은 답사중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일컬으며 강진과 해남 지역을 답사기 제1장 제1절 로 남겼다. 

그 답사기(나의문화유산답사기)는 1990년대 답사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기도 하였다. 다른 분야보다 조금 더 여행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그 책을 사서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강진, 해남이라는 지역명과 송광사라는 사찰 이름 정도이다. 

국토의 최남단, 전라남도 강진과 해남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장 제1절로 삼은 것은 결코 무작위의 선택이 아니다. 답사라면 사람들은 으레 경주·부여· 공주 같은 옛 왕도의 화려한 유물을 구경가는 일로 생각할 것이며, 나 또한 답사의 초심자 시절에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내가 답사의 광(狂)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 곳을 따라 가고 또 가고, 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 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여덟번을 다녀온 곳이 바로 이 강진 해남 땅이다.

강진과 해남은 우리 역사 속에서 단 한번도 무대의 전면에 부상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 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 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 옛날 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 [유홍준 저, ‘나의문화유산 답사기’ 본문중 첫문장에서]

 

한해가 저물어가고 또 한해가 온다. 

2막인생을 시작하는 설레임으로 출발한 은퇴생활이 500일이 가까워 온다. 그동안 난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얻었는가? 세상 어떤 일이고 손에 잡히는 일이 극히 드문 것처럼 1년 6개월동안 내가 손에 쥔 어떤 실체도 없다.

새해를 맞아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왜 남도를 택했는지 구체적인 이유는 없다. 
혹시, 해안가에서 차가 고립될 정도의 함박눈과 조우 할 수 있을까? 살을 애는 듯한 세밑 추위를 남쪽으로 가면 피할 수 있을까? 사는 곳에서 떠나 멀리 여행을 가면 현실은 잊혀지고 이상에 따른 새로운 세계에 접 할 수 있을까?

남도.. 그것도 전라남도가 내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무엇 이었던가. 
사회생활을 하기 전까지 난 고향인 서울위성도시를 떠나 다른 곳을 여행할 기회가 없었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통된 의식 속의 습관인 지연(地緣)으로 인해 타향에서 온 사람들 특히, 남도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는 그저 무덤덤 이었다. 원래의 성격이 지배적이긴 했겠지만 거기에 지연이라는 요인이 더해져 무의식 적으로 그랬었나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등학교입학 할 즈음,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것을 막기위해 (라고 쓰고,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인 박지만을 위한 고교 평준화정책 이라고 읽는) 지방에서 서울로 향하는 고교입시생들이 위성도시인 이곳에 몰리면서 전국 각지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받게 되었다. 따라서 그나마 조금 더 일찍 지연에 대한 의식을 정립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때의 의식이라는 것이 결국 부모나 선배 그리고 친척들로부터 전수된 의식이니 고운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지 못했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런 의식은 최근까지 내가 처음 만나는 사람들을 지연으로 판단하는 기준에 선택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것 같다.

얼마전, 고흥반도를 여행하면서 아내와 함께 전라도 여행의 특성을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내가 가 본 곳 만을 염두 해두고 한 이야기겠지만, 강원도와 비교하면 절대 평지이며 변화무쌍하지 않은 지형이니, 지형으로 보면 그리 흥미를 유발 할 만한 곳이 아닐 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그렇기는 하지만 전라도를 보려면 외형보다는 디테일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아내의 말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그저 평범한 풍경도 내려서 들여다 보면 관심이 갈 수 있는 것들을 발견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렇게 변화무쌍하지 않는 곳이라 치부하면서도 오히려 교통이 좋고, 지인들과 만날 기회가 많은 경상도로의 여행보다 더 많은 횟수를 찾았던 곳이 이곳 전라남도였다. 그리고 돌아서면 같은 이야기를 번복했었다. 흥미를 유발 할 수 없는 지형이라고..
지금 생각 해 보면, 강원도나 경상도 지역은 외부로 나타난 풍경에 눈길이 갔던 것이고, 전라도는 내면의 풍경이 존재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이 또한 내가 그렇게 단정지을 만한 근거는 없다.

남도 여행은 역시 봄이 아니겠는가? 찬바람이 몰아치고 동장군을 물러가지 않는 중부지방으로 남도에서 전해오는 봄소식은 마치 희망의 속삭임과 같지 않았던가? 이른봄을 느껴보고자 서둘러 남도로 떠나는 이유가 그러할 것이다. 섬진강에서 전해오는 봄소식과, 구례 하동의 매화꽃 그리고 벚꽃까지 봄을 가장먼저 느낄 수 있는 곳. 
헌데, 시간이 많아지고 봄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한 은퇴자는 깊은 겨울 무엇을 찾으려 남도 여행을 떠나려 하는가? 아마도 갑갑한 마음을 털어버리고 싶은 심정 때문이리라.

산수유나 매화꽃을 볼 수 있는 시기도 아니니, 테마를 사찰로 잡아본다. 
월출산을 중심으로 한 도갑사, 월남사, 무위사 순천을 중심으로 한 선암사, 송광사, 다산초당 강진 해남을 중심으로 한 대흥사 미황사 백련사등 유명한 절을 순례해 보고자 한다. 평소 사찰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이 없었던 터라 지형과 풍경 위주로 돌아보겠지만, 이번 기회에 사찰에 대한 관심으로 한발짝 다가서 보려 한다.

서둘러 결정하고 그에 맞는 목적을 붙여 여행에 임하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