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작가가 자전거를 타면서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일까? 책을 선택한 동기이다.
부분적으로 내가 궁금했던 감정을 표현하기는 했지만, 책의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닌 것 같다. 저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보고 느낀 것에 대한 기록을 했을지 모르지만 글을 읽는 나로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지 않았더라도 그분은 어디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자전거를 탔기 때문에 받은 특별한 느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나무에 대한 글이 많이 눈에 띄었다. 아니면 내가 나무에 대한 글을 유심하게 읽었는지 모르겠다. 강원도 고성지방의 ‘건국이래’ 최대의 산불이나 동해안의 ’단군이래’ 최대의 산불’을 세심하게 전달하였으며 광릉의 숲, 구례와 안면도의 숲과 나무에 대한 내용도 나무에 관한 글이다.
122 ~ 173페이지에 걸친 자전거를 타고 한강을 을 돌며 암사동 선사시대부터 김포 전류리의 분단된 현실, 그리고 정약용의 간략한 생애중 두물머리 능내마을과 천진암에 얽힌 천주교인들의 순교와 배교는 자전거길의 중심에 있는 한강과 함께한 역사이야기 이기에 숨가쁘게 읽어내려 갔다.
뒷부분에서는 사라지는 갯벌을 아쉬워하며 자전거를 끌고 이제는 바닷물이 말라버린 방조제 안 쪾을 돌아본다. 시화 방조제, 화옹방조제 등 경기만에 없어지고 잊혀져 가는 갯벌 마을에 대한 관심은 작가의 아쉬움을 공감할 수 있어서 기회가 되면 어떤 방법으로 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무들 사이를 자전거로 달릴 때, 바퀴는 굴러도 바퀴의 중심축의 한 극점은 항상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 극점이 움직인다면 자전거 바 레의 회전운동은 불가능할 것이다. 적막한 중심은 나이테 동심원 속에 있고 자전거 바퀴 속에도 있다. 그 중심이 자전거를 나아가게 해준다. 숲 속으로 자전거를 저어갈 때 나무와 자전거는 다르지 않다. 나무는 늘 인간의 마을에서 자란다. 광릉 숲은 서울에서 가까워서 좋다. [110 page]
젊은 날에는 늘 새벽의 상류 쪽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하류의 저녁 무렵이 궁금하다. 자전거는 하류로 간다. 하류의 끝까지 가겠다. 거기서 새로운 시원과 만날 수 있다면 우리는 맹자의 책을 덮어두어도 좋을 것이다. [131 page]
겸재 정선의 화첩 속에서 서울과 한강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이룬다. 겸재는 한강 물줄기를 따라 내려가면서 물과 산이 조화를 이루는 곳에서 수많은 그림을 남겼다. 그의 한강 화폭을 상류에서부터 점검해 내려오면 다음과 같다.
▲ 경기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물가-남한강 • 북한강의 합수 머리와 그 너머의 예봉산 ▲ 경기 광주군 남종면 분원리 물가 -능내리의 강 건너 맞은편- 용문산 · 검단산의 산세 ▲ 미사리 요트 경기장 부근의 물가 -강 건너 와부마을의 숲과 서원 ▲ 광나루-워커힐 뒤쪽 아차산의모습과 그 산 밑 마을 ▲ 송파나루-남한산성과 청량산의 산세. 삼전도비 주변 마을 ▲ 압구정동 앞 한강 - 강 너머 성동구 옥수동.금호동마을과 그 너머의 서울 산세 ▲ 강서구 가양동 벽산아파트 뒤 올림픽 대로변의 궁산 (이 자리에서 겸재는 많은 그림을 그렸다)-여기서 본 남산의 일출, 궁산 앞 강과 서대문 쪽 안산의 모습, 한강 물 속의 바위, 강북 쪽으로 펼쳐지는 북악 · 인왕. 낙산 · 안산의 잇단 풍경, 절두산쪽으로 성산대교와 양화대교 사이의 산세, 행주 산성 부근의 풍경 등이다. ▲ 강 서구 방화2동 개화산 위에서 본 한강-임진강과 만나 서해로 흘러드는 먼 강과 먼 산의 풍경 ▲ 방화2동 개화산 개화사-강과 산과 절의 풍경, 개화사는 지금 약사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위치는 그대로다 겸재의 거점들은 거의 대부분이 한강 강남 자전거도로 선상이나 그 주변에 있다. [139 page]
풍경은 사물로서 무의미하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덜 틀린다. 풍경은 인문이 아니라 자연이다. 풍경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풍경은 아름답거나 추악하지 않다. 풍경은 쓸쓸하거나 화사하지 않다. 풍경은 자유도 아니고 억압도 아니다. 풍경은 인간을 향해 아무런 말도 걸어 오지 않는다. 풍경은 언어와 사소한 관련도 없는 시간과 공간 속으로 펼쳐져 있다. [143 page]
강은 인간의 것이 아니어서 흘러가면 돌아올 수 없지만, 길은 인간의 것이므로 마을에서 마을로 되돌아올 수 있었고, 모든 길은 그 위를 가는 자가 주인인 것이어서 이 강가 마을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과 친인척과 이웃은 흔히 상류와 하류 사이의 물가 길을 오가며 이루어 졌다. 그러므로 이 늙은 길은 가(街)가 아니고 로(路)도 아니며 삶의 원리로 서의 도(道)이다. 자전거는 이 우마 찻길을 따라서 강물을 바짝 끼고 달렸다. [181 page]
겨울 섬진강은 적막하다. 돌길에 자전거가 덜커덕거리자 졸던 물새들 놀라서 날아 오른다. 겨울의 강은 흐름이 아니라 이음이었다. 강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인간의 표정으로 깊이 가라 앉아 있었고, 물은 속으로만 깊게 흘렀다.
가파른 산굽이를 여울져 흐르는 젊은 여름 강의 휘모리장단이나, 이윽고 하구에 이르러 아득한 산야를 느리게 휘돌아 나가는 늙은 강의 진양조장단도 들리지 않았다.
산하는 본래가 인간이 연주 할 수 없는 거대한 악기 와도 같은 것인데, 겨울의 섬진강과 노령 산맥은 수런거리는 모든 리듬을 땅속 깊이 감추고 있었다. 겨울의 산과 강은 서로 어려워하고 있었고, 자전거는 그 어려워하는 산과 강 사이의 길을 따라 달린다. [181 page]
'자전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1.09.30] 자월도 자전거 투어 (0) | 2021.10.02 |
---|---|
[2021.09.26] 가족 라이딩 (feat . 자린이들 한강다녀오기) (0) | 2021.09.27 |
[2021.08.28] 대부도 + 시화호 (0) | 2021.08.29 |
자전거 구입후 첫 주행 (0) | 2021.08.22 |
[2021.6.28] 자전거 정비 교육 (0) | 2021.06.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