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다는 생각으로 접근한 건 아니다. 오히려 적응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실패를 인정하고 빠져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일손을 놓으며 가장 우선순위에 둔 것은 세끼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였다.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은 것 은 인생 전반전을 살며 익히 경험해 온 바다. 인생 전반전에서 나에게 주어진 가장 우선순위는 일을 하여 가족을 부양하는 일이었다. 인생 후반전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가 알아서 하면 될 것 같다.
그런 자유가 주어진 반면 삼시세끼, 아니 적어도 그중 한 끼 쯤은 온전하게 내가 해결하고 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는 퇴근 후에 아이들에게 저녁을 해 주었다 하고 누구는 빨래를 해서 널었다고 한다. 또다른 누구는 쓰레기 분류 하는 일을 솔선 수범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식사시간에 숫가락 놓는 일마저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차려놓은 밥상에 숫가락 들고 떠 넣기만 했다. 태어나서 지금 현재까지.
그래서 인생 후반전에는 나를 위한 자유를 얻은 대신, 인생 전반전 내내 나의 먹거리를 챙긴 사람에게도 내 먹거리를 위해 투자하는 시간을 되돌려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이다.
그 위대한 여정의 첫날
아침에 무엇을 먹을 것일까 결정하는 일부터 어설프다. 어리 버리 하다가 누릉지를 끓여 늦은 아침을 먹고 나니 점심때가 가까워 졌다. 라면을 끓이거나 인스탄스 식품으로 계속 연명을 한다면 삼시 세끼를 행하고자 하는 의미는 퇴색 될 것 이다. 저녁에 남는 밥이 생기더라도 일단 점심밥을 넉넉하게 만들자.
그렇게 중요한(?) 결정을 마치고 시계를 보니, 회사에서 점심 먹을 시간은 이미 지나가 있었다. 반찬을 만들 재로나 밑반찬 몇가지는 이미 집에서 챙겨주어서 냉장고에 충분하다. 국이나 찌게를 만들어 보려 생각하니 한 두시간 내에 점심식사를 못 할 것 같아서 냉장고의 밑반찬으로 점심을 먹고 나니, 또 누른밥이 생긴다. 저녁 한끼는 무엇으로 해결해야 할지..
누른밥이 생겼으니, 버리기도 아깝고 결국 저녁은 아침과 같은 누른밥으로 결정을 한다.
잠시 잔듸를 깍았는데 해가 저물어 간다. 고민할 시간도 없다. 저녁은 점심밥을 하면서 생긴 누른 밥과 밑반찬으로 허겁지겁 때운다. 삼시세끼를 외치던 오늘 하루도 누렇게 누러 가고있는 느낌이다.
삼시세끼.
쉽지 않다. 열심히 노력하지 안으면 이루지못할 과제 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기 싫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지금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세끼를 스스로 해결하려는 내가 기특하기도 하다. 오늘 하루 내내 세끼 때우는 생각만을 했었다. 이제 처음 시작인데.. 하루.. 이틀.. 그렇게 세끼를 해결하는 날들을 번복하다 보면 익숙한 날이 오지 않을까?
인생 전반부에서 어설프게 일과 접 했을 때를 상기하자.
지금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앞으로 남은 날에 대한 끼니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PS :
집사람에게 우려가 섞인 전화가 왔다. 식사 잘 해결하고 있느냐고..
쉽지 않은데? 하긴 40여년 끼니를 챙긴 사람이 한 일을 어찌 하루 경험하여 쉽다 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라는 나의 말에..
40년 한사람이라도 끼니를 챙기는 건 지금도 쉽지 않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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