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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8] 정선 귤암리 옛길도보여행

루커라운드 2009. 3. 28. 23:30

 

잠시 틈 만나면 정선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정선 북실리에서 귤암리로 가는 옛길도보 공지를 접한 이후 무려 한달여 동안이나..

귤암리는 정선을 거친 조양강이 동강으로 이어지는 강변에 위치한 마을로서 오랜 기억과 함께한 동강 이란 지명이 여행에 대한

갈망과 기대감을 한없이 증가시킨다.
 
동강..
가족여행에 매료되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던 그 몇 해에 포함된 시점이었었다. 사회에 만족 할 만큼 적응하지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하는 이유는 언젠가는 지금 이 생활에서 탈피하여 더 풍요롭고 더 유익한 삶을 살아갈 것 이라는 꿈에서 깨어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이젠 내가 나를 정확한 시각으로 보고, 사회생활을 하며 내 능력에 비해 전혀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는

생각과 모험적으로 뛰어들어 거친 풍랑이 있는 항로를 포기하고 위험하지 않은 인생항로를 항해를 할 즈음이었다. 한편으로 보면

결과를 알 수 없는 끝없는 도전의 길에서 이젠 빗겨갈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달한 큰 녀석과 겨우 초등학교를 입학한 작은 녀석에게 이것저것 많은것을 보고 경험하여, 지식보다 더 중요한

지혜를 얻을수 있는것중의 하나가 여행이라고 알려주고싶은마음에 주말이면 뒤도 안 돌아보고 여행이라는 미명으로 포장하여

이곳 저곳으로 튀어 다니던 때였다. 그렇게 가족여행에 대한 감수성이 한참 물이 오른(?)시점에 우연히 작성한 동강 기행문이동료에

의해 사보에 실린 이후, 사진과 글로서 생활, 여행의 기록을 하는 습관을 기르기 시작했으니, 동강은 내 생활습관 중 하나의 변곡점을

나에게 준 여행지였다.

이른 아침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차에 시간을 맞추려면 다섯시 반에는 일어나야 한다. 평소 회사에 가기 위해 기상하는 시간과 차이는

없었지만 쫓기듯 긴박하게 움직인 일주일동안의 생활을 감안한다면 조금은 꾀를 부려 보고도 싶은 토요일이다.

목요일은 회식자리가 있어 만취된 상태로 자정이나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금요일은 친구장인의 상갓집이 신탄진에 있어,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을 이미 포기했지만, 동행했던 친구들과 귀가시간을 맞추느라 새벽세시나 되어 잠을 청했다. 불과 두 시간 반 정도눈을 붙이고,

그렇게 기다리던 정선으로의 여행을 떠나기 위해 피곤함을 참아야 했다.
 
아침일찍 일어나 거실에 늘여놓은 준비물을 챙기다가 아이젠을 발견한다. 며칠 동안 날씨며 뉴스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지만,

집사람이 챙긴 준비물에 의아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침가리골을 걸으며 아이젠의 필수성을 재확인 한 집사람은 이삼일전 강원도에

내린 폭설을 상기하며 아이젠을 준비했던 것이다.

 

봄의 느낌을 받으려면 조금 이른 시점은 아닐까? 그 나목[裸木]의 군들로 황량한 산길을 걸어가면서 조금은 어렵게 시간을 낸 여행에

대한 욕구를 만족 시킬 수 있을까?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 더 아는 만큼 더 많이 보이는 여행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이런 종류의

의문은 언제부터인가 하나 둘 멀어지는 집중력으로 만족스런 답을 얻을 수 없었다.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고속도로를 통해 강원도의 내륙을 향해 잠시 가다서다를 번복했지만 피곤한 몸이 수면을 취하기에 적당한

흔들림을 주었다. 고속도로를 빠져 나온 버스는 많은 길들이 직선화, 현대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강원도가 험준한길임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그렇게 흔들리며 구불거리는 도로로 평창 미탄 그리고 비행기재 터널을 지나고 나서야 버스는 정선의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병방산전망대와 뱅뱅이재로 가는길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있었다. 며칠 전 내린 눈이 계곡 양편으로 개간한 밭의 경사면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불과 한 시간여의 가벼운 경사길을 올라 전망대에 서니 사진으로만 보던 산세의 웅장함을 실제로

느낄 수 있었다. 절벽 밑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과 강의 일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의 위치가 절묘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귤암리 옛길 그 경사진 절벽의 산허리로 이어진다. 전망대에서 어렴풋이 보여지던 길을 따라가다 한고비를 돌아 누군가에 의해

쌓여진 돌답을 지나면 그 길은 급경사를 이루며 절벽의 아래로 향한다. 도저히 길이 있다고 상상도할 수 없는 경사가 산허리를 갈지자로

족히 수십번을 그리면서 내려오는 길이 만들어진, 그래서 뱅뱅이 길이라 이름 붙여진 그길을 홀로 걸었다면 갈지자 [之] 로 오가는

뱅뱅이재의 이름 과 실체를 이렇게 생생하게 느끼기는 지는 못했으리라.

한치거리로만 늘어서도 백여메타 이상의 행렬의 시작과 끝이 한눈에 들어오기에 그 길의 특성을 유감없이 볼 수 있었단 말이다.

 

지난가을에 떨어진 낙엽들은 또 얼마나 그 길의 특색을 더해 주던가. 가이 없을것 같은 절벽의 경사면에 떨어져, 작은 바람, 작은 비에도

떨어진 위치에 머물 수가 없었던 낙엽들은 경사면을 흘러내리다가 사람들이 다니던 그 길에 주저앉기를 몇해동안 해오지 안았던가

우리가 가는 그 길에 봄이 오고 있음에도 오히려 낙엽이 있어 길을 인식할 수가 있었으며,발목까지 빠지는 길 아닌 길을 생활을 위해 필히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옛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걷는 내내 귀에 들리는 듯 했다.

 

며칠전 내린 눈으로 인하여 응달진 길은 발디디는 곳마다 미끄러움이 도사리고 있었고 한발자국만 빗겨가도 한없는 낭떠러지고

굴러 떨어질 것 같은 그길 군데군데 생강나무와 현호색, 노루귀, 제비꽃 몇 그루와 이름모를 풀들이 외롭게 봄 마중 나왔다가

뒤늦은 눈에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귤암리에 내려서서 동강을 따라 광하리로 나오는 길은 뱅뱅이재를 걸으며 조금은 긴박했던 분위기를 풀어주기에 제격이다.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 일지라도 차량의 왕래횟수가 빈번치 않고, 갈수기 임에도 여울목을 지나는 물 흐르는 소리가 도시의 소음에

익숙해져 버린 귀의 피곤함을 달래주니 주변의 경관마저도 정겨워 보인다.

 

물이 굽이치는 지점의 급격한 암벽아래 몇몇의 차량들과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약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낚시를 하고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저 보이는 현상으로 그들의 행위를 추측해보나, 너른 그리고 웅장한 자연의 공간속에 동일한 형체의 사람들의 무리가 그저 눈에

들어왔다는 이유 말고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십여분을 걸어 근처에서 본 그들은 나름대로 특색 있는 카메라를 손에 들고 이곳저곳 노려보는 눈빛이 심상치않다.


야생화 동호회에서 단체로 사진촬영을 나온 사람들이다. 동강할미꽃의 군락지였다.
동강할미꽃의 자태를 사진으로 보고 그 모습에 감탄을 한적이 있다. 더러는 절벽위에 도도히 피어나 흘러가는 동강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의 할미꽃을 야생화 사이트에서 볼 수 있었지만, 난 그런 종류의 야생화를 보려면 아주 깊은 산속이나 절벽 위에 자일에

의지해야만 그와 같은 사진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상상했었다.

 

사진에서 본 야생화보다 실제 자생하고 있는 모습은 환상적이었다. 경사진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무리를 지어있는 할미꽃은

꼬부라진할미꽃이 아닌, 그곳에 자리 하므로써 그들 고유의 자태를 제대로 갖춘, 그래서 비와 바람과 눈과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력을 이어왔음에 경이로운 생각마저 들었다. 움마저 표하고 싶은 마음이다.

 

다섯시간동안 스쳐간 풍경을 마음속에 담고 서울로 오는 차에 오른다.
그 다섯시간을 위해 개략 여덟시간 동안 버스로 이동을 했다는 것이 조금은 불만족스럽다.

 

그래도 그 동안 몸과 마음이 자연과 함께 하며 호사를 누렷기에 뿌듯한 마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다음 번엔 어디에서 또 그와 같은 호사스럼움을 느껴볼까 하는 기대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