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작년하고 올해하고 다르다는 말들을 한다.
어차피 체력적으로 인생의 절정기를 넘어섰으니,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느끼는 감정은 “갈수록 힘이 든다”가 맞는 것 같다.
가끔씩 출근을 위해 일어나면서 하루만 푹 쉬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은연중 내 뱉으면 즉각 되돌아오는 멘트가 있다. 반나절 정도 쉬고 나면 안절부절 하면서 습관처럼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를 고민하는 내게
“일주일을 쉬라고 해도 다음날이면 힘들다고 할 텐데??” 라고..
인정… 인정한다. 기본적으로 잠시를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습관은 피의 성분인가? 아니면 멘탈 인가 그도 아니면 후천적인 정서불안에서 오는 행동인가?
가까이 지내는 지인들도 내 행동을 보면 가끔은 이해가 가지 않는가 보다. 몸이 피곤하면 잠을 보충하거나 소파를 끼고 티비에 눈을 돌려 편안한자세로 쉬다가 잠을 청하던지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라는 말을 들으면.. 귓속말로 부탁을 하고 싶어진다.
“열심히 사는 것 같다 라고 빗겨서 말해주면 안될까?” 하고..
여하튼.. 내가 생각해도 좀 피곤하게 사는 스타일이다.
영덕블루로드의 마지막 구간인 “C”코스를 걷기 위해 여지없이 폭염 길을 나섰다. 영해시외버스 터미널근처에서 가정식 백반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먹은 후 어제 버스를 타고 나온 길을 되돌아 축산항으로 갔다. 주변마트에서 얼린 물과 음료수를 사고 남씨발상지의 비석이 있는 곳 뒤로 산길을 오른다.
이동거리 18.24Km, 소요시간 7.5시간(휴식시간 포함),
남씨발상지 -> 대소산봉수대 -> 사진구름다리 -> 목은이색기념관 -> 괴시리전통마을 -> 대진항 -> 대진해수욕장 -> 고래불해수욕장
C코스는 A코스의 강구항에서 고불봉을 오르는 구간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주변으로 소나무와 제법 너른 오솔길 그리고 운동기구들이 놓인 길을 한 시간 이상 오르니 축산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대소산 봉수대가 나온다.
축산항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봉수대의 내력을 읽는 동안 새삼 봉수대가 통신 수단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던 시절이 있었음을 생각해 본다. 영덕 축산포 방면의 상황을 서울 남산까지 전하던 곳이라고 한다.
오늘같이 해무가 낀 날에는 나름 제약이 있었겠지만, 북으로는 후리산봉수대, 서로는 광산 봉수대로 연락을 취하며 그 통신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벽을 쌓아 놓았다고 한다.
그 옛날 이곳 봉수대를 지키던 사람들은 평소 어떤 생각을 하며 주변을 바라보았을까? 과연 백 수 십년이 지났을 즈음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지나가고 있을까 생각이나 했었을까?
주변 풍경이 주는 생각은 뜻하지 않은 곳으로 이어져가고 있었다.
<봉수대에서 내려다 본 축산항>
봉수대를 떠난 길은 괴시리 전통마을까지 해송 사이를 두 시간여 걷는다. 오늘 마지막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생각으로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지는 거리의 길이지만 “사색의 길”이라 이름 붙여놓은 것이 잘 어울리는 길이다.
좀더 생각이 복잡해 지고 주변환경이 팍팍해 질 즈음 이곳 단축된 길을 시간 제약 없이 걸어보고 싶은 충동이 몰려올 법한 길이다.
괴시리 전통마을로 들어서면 고도를 높이거나 낮추는 코스는 끝이다. 아스팔트 도로변을 따라 대진항까지 가는 길에 점심식사를 한다. 삼거리에 놓여있는 삼계탕집은 점심손님들로 제법 북적 인다.
대진항을 지나 대진1리마을로 들어서니 한적한 어촌에 팬션을 겸한 슈퍼와 스쿠버 다이빙을 하는 사무실앞에 빙과류와 음료수로 남은 거리를 점검한다.
대진해변을 지나 고래불 대교에 올라서니 민물과 바닷물이 어우러지는 해변이 이채롭다. 이어지는 덕천 해수욕장의 소나무해변은 야영을 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지만, 역시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쓰레기가 문제다.
마침 점심시간이 훨씬 지난 월요일이어서 군데군데 텐트를 친 사람들은 있지만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경운기가 해변의 운치를 반감 시킨다.
영덕군 고래불 하계휴양소에서 경북 수자원 개발연구소에 이르는 해변도로는 자전거 길과 병행한다. 중간중간 자전거캠핑장비를 싣고 움직이는 사람들과 자동차 뿐 뜨거운 아스팔트 길 위를 걷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고래불 해수욕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동안 경치도 좋고 물도 깨끗한 해변을 여러 곳을 지나오면서 상대적으로 해수욕장에 사람들이 없다는 것은 전날 경정 해수욕장에 잠시 해수욕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바닷물의 온도가 현저하게 낮아서 바닷속에 들어가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남해안과 같이 바닷의 경사가 적은 해수욕장에서야 햇볕에 달구어진 물로 추운 줄 모르겠지만, 동해안과 같이 해안경사도가 가파른 곳은 해수면의 온도가 쉽게 올라가지 못하고 따라서 더위를 식히려 해수욕을 하는 사람들도 찬 물속으로 쉽게 그리고 오래 있지를 못하는 것 같다.
고래불 해수욕장 또한 시원하게 펼쳐진 해수욕장과 부대시설에 비하면 그리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다..
처음시작 할 때 별 의미 없이 안내책자에 스탬프를 찍던 아들은 마지막 이정표에서 완주 Stamp찎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제, 시외버스터미널로 버스를 타고 가야하고 한 시간 정도에 한번씩 있는 버스를 기다리는 일은 그리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안내책자에 있는 완주 메달을 받을 수 있는 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고래불 해변근처에 있는 병곡면 사무소에 들어가니 일단 더위를 피할 수 있었고, 화장실을 찾는 우리에게 면사무소 직원은 정성껏 알려주었다. 완주메달을 묻는 아들에게도, 그리고 면사무소의 소파에 앉아 잠시 쉬는 나에게도 직원들은 소소하게 관심을 갖아 주더니 직원 한 분이 우리가 걸어온 길이며, 행적을 묻는다.
면사무소에서 제공하는 커피를 빼주고 완주를 한 우리들을 면장님께 인사시켜 주시겠단다. 여 면장님은 블루로드를 방문한 우리에게 감사와 격려를 해 주셨고, 사무소를 떠나기 전까지 영해로 가는 교통편에 대하여 상세하게 알려 주셨다.
사실 공무원과 나와의 관계는 그저 나랏일을 하는 사람과 회사 일을 하는 평소 별 관계가 없는 사람들로 단정 지어왔었다. 과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면 내가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하지만, 오늘 이곳에 그들의 세심한 배려를 받고 보니 나보다도 아들이 생각 치도 못했던 호의에 더 많이 감동을 받았나 보다. 혹시 이 글에서라도 그들이 볼 수 있다면, 글로라도 전하고 싶다.
“병곡면 사무소 직원님들 감사합니다. 이번 방문으로 공무원에 대한 인식이 조금 바뀌게 되었습니다. 블루로드의 한 추억 속에 병곡 면사무소 직원들까지 포함 시키겠습니다.”
영해터미널로 돌아온 우리는 서둘러 차를 몰아 안동역 근처의 찜질방에서 하루 동안의 땀을 씻어내고, 근처 간 고등어 백반으로 저녁을 마친 후 늦은 시간에 횡성 텃밭으로 들어왔다.
누군가에게 가족과 함께 작은 목표를 이룬 것에 감사를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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