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8일 토요일 강구항 근처의 민박집 창문으로 따뜻한(?) 아침햇살이 들이친다. 오늘 도보여행이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 하다.
우리가족 중 큰 딸만이 도보여행에 참여를 하지 않았다.
녀석은 한 달전 인도를 여행하겠다며 두 달의 여정으로 홀연히 떠났다. 가끔씩 SNS를 통하여 사진이나 문자를 보내 그리 궁금하지는 않지만, 오늘은 그녀석의 생일이다.
녀석의 생일인 88년8월8일은 음력으로 6월 26일이다. 음력으로 따지면 내 생일 다음날이다.
올해는 내생일 보다 하루 빠른 날인 오늘이 녀석 생일인 것이다.
가끔… "사랑한다." 라던가 하트를 문자로 날리면 녀석의 답변은 한결같다.
진지 하게 ”아빠 술 드셨어요?” 라고..
오늘은 사전에 아빠 아침이라 술 안 먹고 생일 축하문자 보낸다는 단서를 달았다.
어제저녁을 먹으며 눈 여겨 보아놓은 아침 식사가 된다는 간판이 써 붙어있는 강구시장에서 미주구리(물가자미) 찌개로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는다. 마침 오늘은 강구에 장이 서는 날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부터 수산물이며 농산물, 옷을 팔기 위해 노점을 펴는 상인들로 복잡하다.
“빛과 바람의 길”이라 명한 영덕블루로드 A 코스는 강구항이 보이는 언덕을 오르면서 고불봉 까지 느슨하고 경사진 등산로로 이동을 한다.
이동거리 19.35Km, 소요시간 8시간30분(휴식시간 포함),
강구터미널 -> 강구항 -> 금진구름다리 -> 고불봉 -> 해맞이캠핑장 -> 신재생에너지전시관 -> 풍력발전단지 -> 해맞이공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등산로라고 하지만 길은 보기에도 편안한 소나무가 좌우에 도열을 하고 중간중간 평상이나 운동기구가 놓여 등산로라기보다는 운동을 위한 산책로를 연상케 한다.
단지… 날이 더웠다.
전날 D코스를 움직이며 지나왔던 해안마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멀리 동해의 바닷가만이 산 넘어 넘실대는 파도와 함께 한다. 아무리 편한 길이라고 하지만 출발점에서부터 7Km여 거리에 있는 고불봉 까지는 그리 쉬운 여정이 아니다.
고불봉에서 영덕 시내를 내려다 보며 온 길에 대한 감회를 느낄 새도 없이 길은 가파르게 산 아래로 향한다. 시간은 이미 오후 한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전날 걸었던 코스를 생각하며 준비해온 간식이나 물은 이미 바닥이 나 있었다.
“환경 관리자원 쎈터”는 알기 쉽게 표현하면 쓰리게 처리장이다.
그곳에 가면 먹을 것을 살 수 있거나 물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잘못된 생각이었다.
아성 폐차장에서 산길을 돌아 산림생태문화 체험공원이나 풍력발전소가 있는 곳을 향하는 산길을 올라서기 전에 우린 이미 더위와 체력의 고갈로 기진맥진해 있었다. 더구나 배낭엔 우리 허길 채워줄 아무것도 없었다.
때마침 아성 폐자장에서 한 분이 문을 잠그며 밖으로 나오신다. 토요일임에 오전 근무를 하고 퇴근을 하는듯 싶었다. 염치 불구하고 물좀 얻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잠그던 문을 다시 열고 사무실에서 생수통을 이용한 정수기를 가르쳐 주신다.
내가 물을 받는 사이 집사람은 폐차장앞에 음식을 시켜 드시고 난 젓가락 봉지를 발견한 것 같다.
그 봉지에 쓰여진 중국음식점으로 전화를 걸어 “콩국수와 냉면”을 주문하면서 물까지도 배달을 부탁하였다.
이곳 폐차장보다 환경이 나을듯하여 환경관리자원쎈터 정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전하고 5분여거리를 걸어올라 10분정도를 기다리니 과연 산길까지도 음식을 배달해서 먹을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콩국수와 냉면으로 배를 채우고 나니 당장은 무서울게 없었다. 하지만, 산너머 산이라고 했던가? 임도로 이루어진 해맞이 공원까지의 9Km는 지루하기 그지 없는 길이었다.
어쩌면 더위로 인하여 주변의 풍경들이 심지어는 귀찮게 느껴 졌는지도 모르겠다. 그 오랜 거리에 팔각정처럼 생긴 정자 서너 곳만이 있을 뿐 길에 이어 또 길…
그렇게 너댓 시간을 걸어 결국 해맞이 공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한시간 여를 기다려 강구로 나오는 버스를 타니 잠시 졸음이 몰려왔다.
지난겨울 변산반도를 걸으며 남도의 음식에 푸짐함을 자랑하던 아들은 결국 한마디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기에는 충분한 고통이 따라야 한다라며..
대게로 유명한 강구로 왔으니 결국 대게를 먹어야만 했다. 더위와 체력소모로 지친 아들과 집사람은 그 시간 만은 눈이 초롱초롱 빛나는 것 같았다.
강구읍내의 모텔에서 땀으로 젖은 몸을 씻고 차를 몰아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강구항의 대게 타운으로 갔다. 기껏해야 셋이서 한장 정도면 푸짐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음식점에 들어가 주문을 하면서, 이건 아닌데 라는 탄식이 흘러 나온다.
대게코스요리를 주문하면 1인당 10만원의 비용이 든단다. 결국 게 한 마리에 10만원씩 3마리정도는 먹어야 한다나?
아들은 몰라도 집사람과 나는 배부르게 먹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그렇지 않아도 옆구리로 불거져 나오는 뱃살을 어찌할 바를 모르겠는데..
결국 두 마리를 셋이서 먹을 수 있도록 주문을 하여, 대게의 고장 강구항에서 먹음의 뜻을 이룰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해안마을과 해수욕장을 지나며 더위에 지친 몸을 기필코 동해바다에 던져 넣겠다고 준비해온 수영복은 그날 무용지물이 되었다.
영덕 블루로드 “A”코스에서는 푸른빛 동해안의 바닷물을 결코 손 댈 수도 없게 놓여진 길이다.
'궁금(걷기·도보) > 영덕블루로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5.08.07~10] 에필로그 (영덕블루로드 도보여행) (0) | 2015.08.26 |
---|---|
[2015.08.10] 목은사색의 길 (영덕블루로드 C코스) (0) | 2015.08.25 |
[2015.08.09] 푸른 대게의 길 (영덕블루로드 B코스) (0) | 2015.08.21 |
[2015.08.07] 쪽빛 파도의 길 (영덕블루로드 D코스) (0) | 2015.08.17 |
[2015.08.07~10] 프롤로그 (영덕블루로드 도보여행) (0) | 2015.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