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화첩기행
지은이 ; 김병종
펴낸곳 ; 문학동네
작가 김병종은 화가이며 대학교수다. 한달이면 보름은 그림을 그리고 열흘은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고 했다. 화첩기행은 저자가 전국을 기행 하며 그 지방의 예인을 떠올리며, 때로는 예인과의 추억과 예인의 감정을 떠올리며 쓴 수필 모음집이다.
정작 화가라고 하는 저자의 화첩기행에 실린 그림이 유치하게 보이는 것은 그 그림을 보고있는 독자(?)의 수준을 미루어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화가이면서 이렇게 그 고장의 특성이나 자기 감정을 글로 나타내니 내 기준으로 본다면 화가보다는 작가이다.
우리나라는 옛 사람들의 흔적을 너무 빨리 지워버리거나 혹은 가벼이 다루는 것 같다. 불과 몇 십년 사이에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린 천재들이 비단 이 책에 언급된 사람들 뿐일까
매번 그 지방을 돌아보며 옛날을 회상하지만, 저자는 ‘가슴에 묻어둔 첫사랑은 다시 만나려 애쓰지 말 것’을 권한다. 사랑만을 빗대었지만 예의 소리, 예의 풍경, 예의 기억들을 아무리 찾아 가고 찾아가 보아도 우리네 그 옛 고향은 이미 현실의 지도위에서는 찾을 수 없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보길도에 대한 오해는 흔히 고산에 대한 오해로 이어질 수도 있다. 보길도는 아름다운 꽃들이 어우러진 남쪽 섬인데 고산은 그 섬을 통째로 누리며 시와 춤과 노래를 한껏 즐기다 간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러나 아니다. 그 이쁜 섬에 부는 세찬 바람과 비를 알지 못하듯, 사람들은고산의 생애가 그토록 아름다운 가사문학으로 피어나기까지 얼마나 쓰고 고통스러운 세월이 있었는지 알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한 보길도나 고산을 피상적으로 밖에 알지못하는 것이다. - 보길도에 들려오는 어부의 가을 노래 -
눈 닿는 데마다벚꽃으로 뒤덮여 멀미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그 몽환 적인 꽃나무 아래를 한도 없이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 길을 가고 또 가면, 어디엔가 피안의 세계 같은 것이 나올 듯했다. 하지만 어린 마음에도, 그 찰나적 아름다움이 주는 아련한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다. 거리와 지붕과 담벼락 마다 눈처럼 내려 부딪쳐 소멸하는 그 순수한 꽃잎들의 장례. 그 기억은 오랜 세월 동안 낙인처럼 가슴에 상처로 남아버렸다. 꽃잎에 상처 입은 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진해에 가려거든 부디 벚꽃 만개할 때만은 피해야 한다. 아름다움의 한가운데마다 말갛게 고여 있는 슬픔의 빛을, 혹 부풀어오는 그 꽃의 양감 속에서 언뜻 보아버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진해에서 피고진 남도의 화인 유택렬 -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배꼽 드러낸 채 풀섶을 달렸을 아이들은 자라 이제는 도회의 회색 빌딩숲 사이로 고단한 삶들이 쏘아 놓은 화살들을 찾아 헤매고 있을까? – 정지용과 옥천 내용중 -
집 앞의 실개천은… 재앙이다. 시멘트로 뒤덮여 있다. 넓은 벌판도, 얼룩빼기 황소의 금빛 울음도 없다. 시인이 유년시절 파아란하늘빛을 좇으며 풀섶 이슬에 함초롬히 올을 적시고 마당의 멍석에 누워 하늘의 성근 별을 세었을 그 옥천은 이제 아니다. – 정지용과 옥천 내용중 -
그가 하는 절규를 이해 할 법도 한 것이 몇 년이 지난 후 아름다운 추억을 찾아간 곳에는 우선 물질문명의 급속한 변화로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어 더 이상 오래전의 아름다운 기억 속으로 한 발자국을 돌릴 수 없는 것을 경험해 보아서 알 수가 있다. 지금, 오늘, 촌음을 아껴 더 돌아보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글 속에 언급되는 채만식의 탁류, 김승옥의 무진기행, 김동리의 역마 등의 소설은 기회가 되면 한번쯤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저자의 글을 백배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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