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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31] 왜 산티아고인가?

루커라운드 2020. 1. 2. 16:58

버킷리스트 1위로 산티아고도보여행을 등록 한지 벌써 7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일정을 수립하지 못하고 있다

산티아고 도보여행이 왜 버킷리스트 가장 우선순위에 등재되었는지 정확한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막연하게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야 한다고 생각한 시점과 도보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시점이 동일한 시점이어서 그랬던가 보다.

생각해 보면 내가 꼭 산티아고에 가야 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나의 첫 버킷리스트라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건 사실이다.


나의 친한 친구는 그 오랜 동안 열정을 받쳐 일하던 회사를 한 순간 박차고 나왔다. 사회생활 시작하며 첫 직장인 그곳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열정을 받쳐 일하던 회사인데, 본인의 노력 이라던가 능력껏 일하여 얻어낸 성과에 대한 인정은커녕 추가적인 성과목표와 그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에 대한 질책이 이어진 때문인 것 같다.

해외에서 근무하던 그는 홀연히 귀국하여 사표를 제출하던 추운 겨울날 팔당에서 양수리까지 걸으며 어설프게도 나는 그에게 충고를 했었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않냐. 그러니 아직 남아 있는 날들을 생각해서 본인의 의지는 조금 죽이고 지속적인 회사생활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아마도 나 또한 그 시점에서 강도는 낮았지만 일들에 대한 스트레스를 도보로 해소하고 있던 시점 이었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산티아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산티아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난 그는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비하며 몇날몇일 체력점검을 하더니 지체없이 산티아고로 떠났다. 그리고는 그 길을 걷는 내내 SNS를 통하여 그곳의 풍경과 느낌을 실황 중계하듯 전해왔다. 많이 부러워하는 내게 부러우면 지는 거라는 멘트도 함께 보내왔다. 이후로 나의 버킷리스트 1위는 더욱 더 산티아고 도보여행으로 굳어져 갔다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겠지만 인생의 변곡점에서 홀로 걸으며 자신을 되돌아 보며 새로운 인생을 점검하려 떠나는 사람이 많았고, 나 또한 그곳에 가면 목적에 부합이 되는 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깊어만 갔다. 정년을 맞으면 짧은 준비기간을 거쳐 곧바로 산티아고로 떠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한편으론 오랫동안의 직장생활을 마치고 홀로 여행하기 위해서는 집사람의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고민하거나 고통을 받을 때 주변에서 지켜 보며 알게 모르게 같은 수준의 고통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경비는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모아 놓은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으니 커다란 비용은 소요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의사를 전달했지만, 홀로 떠난 다는 것에 많은 섭섭함을 느꼈나 보다

결혼 초기에는 아이들을 핑계로 홀로 산행 위주의 여행을 했지만 아이들이 큰 이후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했던 여행이 대부분이었는데 은퇴 후 첫 여행을 홀로 한다고 하니 쉽게 이해 가 가지 않았나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아를 찾기 위해 홀로 여행을 한다. 특히 산티아고를 다녀온 사람들을 보면..

하지만, 어떤 논리를 들어서라도 설득시킬 방법이나 자신이 없었다. 힘들고 어려울 수도 있는 여행인데 함께 할 수 있겠냐고 제안을 했더니 한치의 망설임도 동행 하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산티아고 도보여행은 우리 부부가 함께 가야 할 곳으로 리스트에 등재되었다.


은퇴 후에 해야 할 일들은 목록이 생성될 때마다 산티아고 이후 순위로 정리가 되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산티아고를 다녀와야만 다음 단계의 일들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만 같았다

시간만 날 때마다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관련자료라고 하지만 주로 카페나 블로그를 통하여 그곳에 다녀온 사람들이 준비한 자료나 다녀온 후기를 읽는 것이 다 였지만,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의 여행기를 오랜 기간에 걸쳐 읽었다.  

그렇게 몇 년을 기다려 막상 정년퇴임 시점에 회사로부터 계약직근무제안을 받아 지속 근무를 하게 되니 그 곳으로의 여행에 대한 갈증은 더욱더 깊어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관련 기사나 여행기가 눈에 띠기만 하면 정독을 하여 가장 기본적인 순례길인 프랑스 길을 다녀온 사람만큼이나 많은 정보를 내 머릿속에 가득 채웠다. 언제부터인가 막상 그 길에 서면 처음 기대 했던 것만큼 커다란 감동이 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길에 대한 호기심이 상대적으로 반감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 많은 세월에 대한 바램을 하루아침에 내려 놓을 수는 없었다.


“지평선을 넘은 사람은 마을을 보았고 수평선을 넘은 사람은 세계를 보았다.”

"당신은 당신이 가고자 하는 곳까지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꿈 이상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땅이 되어 주신 아버지 일용할 삶의 짐 등에 매고 침묵의 몸 속 걸었다.” 

이렇게 길을 걸으며 느낀 소감을 생생하게 전하는 순례길 도보여행자의 글을 읽고 나면 더욱 더 그곳으로 가고픈 마음은 깊어만 간다. 그들이 보고 느낀 풍경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그러면서 얻은 인생의 교훈과 벅찬 감동은 간접적인 경험 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만든다

요즘 길에 대한 새로운 자료를 보고 있다. 스페인에서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순례길 중 대표적인 길은 크게 세 코스 이다.

프랑스길 (생장 -> 산티아고 약 800Km)

북쪽길   (산세바스티안 -> 산티아고 약 800Km )

은의길   (세비야-> 산티아고 약 1,000Km  )

더하여,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예를 들면 영국이나 터키의 이스탄블 혹은 스위스에서 출발하여 산티아고를 향하는 순례길도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지금도 이 길 위에 있다. 정작 내가 산티아고를 향해 길을 걷는다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택하는 프랑스 길 보다는 해안선을 따라 걷는 북쪽 길이나 스페인 남부에서부터 중서부로 내륙으로 올라오는 은의 길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결국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직까지도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1위이다. 북쪽 길이든 프랑스 길이든 은의 길이 되든 한곳을 다녀온 다음 그 길에서의 감동이나 느낌에 따라 다른 길도 욕심을 내어 보겠다고 다짐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