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알제리

[2019.11.03] 휴가전야

루커라운드 2019. 11. 3. 11:44

 

가까스로 10시를 넘겼으나 내려오는 눈꺼풀보다는, 최근 그렇게 많은 관심을 갖던 모터사이클 캠핑 유튜브 방송이 눈앞에 아른거리기만 한다. 저녁 먹으며 곁들인 와인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때문인 것 같다.

 

게스트 하우스 사장님은 복도에 가스 난로를 켜 주시고, 난 방안의 방열기로 온도를 올린 다음 침대로 향했다. 알제의 오늘 최고/최저 기은은 20/24도이다.

 

새벽 한시 갈증과 공기의 답답함을 느껴 눈을떳다. 층마다 마련되어 있는 공용장소에는 냉장고와 식기 몇가지, 싱크대, 간단히 물을 끓일 수 있는 커피포트, 서너개의 의자와 테이블이 준비되어있다. 냉장고를 열어 물을 마시고, 방으로 들어와 방열기의 온도를 낮추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을 모양이다.

 

 

 

 

정기휴가를 위해 지방에 있는 현장에서 오늘은 국제공항이 있는 알제로 국내선을 타고와 게스트 하우스에서 하루를 머문 후 내일 경유지인 이스탄블 행 국제선을 타기로 되어있다.

 

공항에 내려 게스트 하우스에서 온 운전 기사에게 짐을 보내고, 공항으로 마중 나온 K부장과 함께 알제의 중심가로 향했다. 6개월전 현장을 떠난 K부장은 본사로부터 알제의 지사장 명을 받고 이곳을 부임한지 한달이 채 되지 않았다.

 

휴일 다음날인 토요일 저녁, 알제의 중심번화가에는 차들이 제법 주차가 되어있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아 한산하기 까지 했다. 한시간 반 후 돌아오라고 기사에게 시간을 일러 준 후 중심가를 잠시 배회하다가 전에 한번 들러 보았다고 하는 현지 음식점에 들어갔다. 너 댓 개의 커다란 홀을 지나 중동 분위기로 꾸며진 홀로 안내를 받았다.

 

 

 

홀을 지나쳐 오며 테이블마다 맥주와 와인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면 이곳에서는 적법하게 술을 팔고 있는 것 같았다. 국교가 무슬림인 이 나라에 음주는 보편화 되어있지 않다. 현장이 있는 지방에는 술을 파는 식당을 찾지 못했었다.

 

우리에게 가져다 준 메뉴로 음식을 시키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열 바닥 남짓의 꽉 채워 쓰여진 메뉴로는 제대로 뜻을 파악하여 음식은 주문 할 수가 없었다. 프랑스어로 된 메뉴 판이며 별도 영어로 된 메뉴 판은 없었다.

 

주문을 받는 웨이터는 제법 나이가 든 초로의 아저씨로 영어로 소통이 되지 않았다. 결국 손발짓으로 양고기 꼬치와 스테이크 그리고 셀러드가 올라 간 국적불명의 음식과 백 포도주 한잔이 나왔다.

 

 

 

포도주를 딴 웨이터는 첫 잔에 작은 양을 따르고는 물끄러미 우릴 쳐다 보았다. 눈치가 빠른 K는 잠시 냄새를 맡으며 한 모금을 들이켜 맛을 본 후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어데 선가 들었던, 처음 마시는 포도주의 시음 과정인 것 같다.

"안 괜찮으면 어떡할 건데? 물러주나?"

이런 저런 루트를 통해 현장에서도 자주 접해 보았던 KOUTOUBIA 라는 알제리 산 포도주는 내가 알기로는 값 비싼 와인은 아닌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의 그런 행동이 조금 우습게 느껴졌다.

 

포도주 한 병을 비우며 추가로 음식을 대접하고 싶었던 K부장은 다시 메뉴를 가져오라고 했다. 다시 본다고 음식 이름이 눈에 들어올리 없고, 이것 저것 택하여 손발 짓을 음식 주문을 시도 해보지만 답답함만 더 해지는 과정이다.

 

구글 번역기에는 사진 기능을 가동하여 글자에 대면 바로 번역이 되는 기능이 있다. 번역된 음식이름으로는 생선 스프, 달팽이 스프, 문어를 곁들인 샐러드, 버섯 복음.. 그리고는 인터넷이 원할 치 않은지 더이상 번역을 하지 못한다.

 

배고픔도 어느정도 가시고 술도 들어갔으니, 주문이 힘든 더 이상의 음식은 포기하고 서툰 몸짓과 영어를 통하여 디저트로 아이스 크림을 주문하였다.

 

남은 음식을 치워 줄거냐 만 묻고 아직 음식과 와인이 남아있어 여유를 두고 시킨 디저트를 가져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메인 음식이 치워지면 디저트를 가져다 줄 모양이다.

 

혹시 그는 경멸 하듯 눈짓을 보내며, '식사 문화도 제대로 모르는 천박한 것들'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현장에서 겪었던 그 많은 이 나라 사람들과 노동자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서, 나 또한 경멸하듯 봐 오면서도 우리와 다른 문화이겠거니 하며 이해 하려했던 나를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