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집 건너편에 사시는 분을 내가 처음 본 해는 1983년?
그러니까 40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열 대여섯 살 정도 더 드셨을 테니 80정도는 되신 것 같다.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그는 40전후의 중년(?)이었는데..
주변 미용실에서 이발을 하고 집으로 가는 모습이 불안하다. 그분의 부인은 뒷짐을 짚고 옆에서 따라가고, 미용실 직원이 노인 분을 부축하여 집으로 모셔다 드리는 것 같다.
세월 참 빠르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내 나이를 잊고 산다고 하지만 가끔씩 나이를 계산하며 소스라치게 놀라고는 한다. 그 나이에 연상되는 모습을 새삼스레 상상도 해 보면서, 절대 난 그 정도의 외형으로는 변해 있지 않을 것이라는 착각까지 해 가면서.
아내는 친구들을 만나 점심 약속이 있다고 하면서 늦은 아침 집을 나섰다. 냉장고 안에 보관해 놓은 밥을 전자레인지에 1분 30초 데우고, 어제 먹던 국은 아직 솥에 있으니 가스 불을 켜서 데우고 냉장고에 있는 김치며 몇가지 반찬이 있다고 알려준다.
한끼쯤 거른다고 건강이 악화되거나 허기가 지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습관처럼 해 오던 식사를 거른다는 것이 왠지 오늘 할 일을 다 하지 못한 것 같아 찬장에 사다 놓은 비빔면을 삶고 양파를 썰어넣고, 달걀 하나를 추가로 삶았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은 이유는 그제 친구들과 둘레길을 걸었음에도 어제 하루를 종일 집에 있었더니 몸은 자꾸 밖으로 나가자 한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이후로 하루 동안 걷는 거리를 20Km이상 걸어본 적이 없으니 오랜만에 맘놓고 걸어볼 작정으로 안양천을 따라 걷는다.
영상10도 가까운 날씨는, 해만 비추어 주었다면 확연하게 봄 날씨 이었을 것 같다. 아니, 해가 없더라도 불어오는 바람 이라던가 천변을 걷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봄을 예감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천변을 걸으니 마주 오는 사람들의 표정에 관심이 간다. 가족들과 느리게 걷는 사람들,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듯 걷는 사람들, 땀을 흘리며 뛰어가는 사람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개개인의 표정이 모두 달랐다. 일 손을 놓고나니 주변의 사람들 표정까지 읽는 여유가 생겼다.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분위기만큼 여유 있어 보이지 않는 것에 놀랐다. 아마도 평소 바쁘고 번잡한 생활 속에서 억지로 여유를 찾기 위해 천변으로 나온 듯 하다.
아쉬운 생각이 스친다.
이렇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 60년 이상을 이 고장에 산 내가 한번쯤 스쳤음 직한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갖는다는 것이.
누군가의 만남을 의식적으로 피해오던 몇년 전의 내 생각과는 판이하게 틀려진 내 행동을 보며, 나이가 들어 늙어가면서 무의식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상상에 잠시 소스라쳐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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