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 않은 일상의 흐름이 더 빠르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번 휴가는 조용히 휴식 모드로 지낼 생각을 하고 출발했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코로나 바이러스때문에 나라 안 밖으로 활동 휴식을 권장하고 있으니..
이른 아침에 공항에 도착하여 집으로 돌아와 바로 휴식 모드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 오랜만에 식탁에 앉아 차려준 점심을 먹었다.
요즘 요양병원에서도 가족방문까지 통제를 하고 있으니, 어머님께 전화 한 통화로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휴가 전 대책없이 삭발을 당하고 2주가 지났건만, 머리의 형상은 딱~~ 중국인이다.
파리공항에서 환승할 때 보안검사직원은 나를 향해 "어이 거기 중국인.. 조금 기다렸다 오시지" 하고 말하는 것을 무시했었다. 평소 다니던 집 근처의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어 달라고 하니 머리 뒤쪽과 귀 부분을 짧게 깎아 정리를 하고 나니 아직 머리는 짧지만, 한국인 비스므레 한 형상으로 돌아온 것 같다. 하지만, 숱이 작고 흰머리가 많다 보니 나이 먹은 촌노의 모습이다.
약국에서 염색약을 구하고 밖으로 나온 김에 농수산물 시장으로 가서 저녁 만찬을 즐기기 위해서 생선 회를 뜨고 딸기와 귤을 샀다. 저녁때가 되니 딸과 사위가 집으로 왔다.
회를 뜨고 난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이고 맥주와 소주로 반주를 하면서 평소와 달리 딸은 지속적으로 대화의 골을 트고 있었다. 알제리 생활은 어떠하냐? 책은 많이 읽으셨냐? 그렇게 일반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와의 결혼 전 연애 이야기, 가족들이 여행 다녔던 곳을 구체적으로 들먹이며 집사람과 나를 과거 속으로 몰고 갔다.
어느새 카메라가 설치 되어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최근에 유튜브제작에 열성을 보이는 것 같다.
오랜 세월의 이야기들을 몇 점씩 꺼내다 보니, 사위는 마치 그것이 일상인것처럼 변화 무쌍한 이야기들에 함께 빠져 있었고, 술 한잔으로 제법 오른 분위기 때문인지 네 가족 모두 그동안 절제 해오던 이야기와 그에 관련된 감정의 이야기까지 쏟아낸다.
어머니에게 옛이야기를 듣다 보면 70%정도 이상은 단골 스토리로 구성이 된다. 아버지의 잘못된 행동, 어머니의 고생한 젊은날, 지겹게도 가난한 집으로 시집온 어머님의 운명, 그리고 우리들을 잘 키우기 위해 고심했던 심정들을 한가한 명절의 오후는 물론이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듣고는 식상하지만 그만 하시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을 아끼고 싶었다. 아이들이 물어오는 사안에만 답변을 하다 보니, 집사람은 구구 절절이 전에 들었던 말들을 번복한다. 아마도 여자들은 과거를 되돌아 보며 할 말이 많긴 한 것 같다. 여하튼 지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특이한 사항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사위가 물었다. 아버님은 왜 그렇게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로 돌아다니셨나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아이들을 훌륭하게 키울, 그리고 그렇게 교육을 시킬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키워야 잘 키우는 것인지, 그리고 당시 내가 보던 교육의 시작과 끝은 사설과외 였었는데 그렇게 돈으로 뒤를 돌보아줄 자신이 없었다. 더구나 내자신의 미래 또한 불확실하다 보니 집에 머물고 있으면 마음은 항상 불안한 상태였다. 외부로 나가 자연과 접하고 돌아오면 그나마 불안이 해소 되는 것 같았다.
그 대답에 딸은 내가 한말이라며,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게 새로운 것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장난감을 사 들고 온 것과 자주 서점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가서 한 두 권의 책을 들려오게 한 것도 기억나게 해 주었다. 맞벌이 부부를 부모로 둔 친구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이 받는 풍부한 용돈을 부러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 아빠는 왜 저희들에게 풍족한 용돈을 줄 수 없었으며 그대신 집에 오면 항상 그들을 반기며 먹을 것을 만들어 주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고 하였다.
밤이 깊어가는 줄 모르고 오랜만에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제 이들도 부모가 인정하는 성인이 되어 가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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