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의 작은 소도시에서 젊은 날을 보내며 그리 쉽지 않게 생활을 영위해 가고 있는, 그래서 아직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 보이는 친구를 찾아간다.
그를 보러 가는 길은 내 어린 날을 만나러 가는 것과 같다.
기억이 희미한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가 한둘이 아니며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공유했던 친구가 한둘이겠느냐마는
그 친구를 만나러 갈 때는 내 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다.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도 함께 느껴가면서 말이다.
농사짓기에 이른 계절 이어 채 갈아놓지 않은 밭으로 푸릇푸릇 서려 있는 봄기운을 느끼며 들판을 가로지른다.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주변의 사설 식물원에는 아직 봄꽃을 보러오는 상춘객들의 모습을 볼 수없지만
그래도 봄기운은 산모퉁이를 돌아 나와 식물원 주변이며 이름없이 허물어진 산성 터를 어슬렁거리고 있다.
특별한 대화가 있을수 없다.
별일 없지? 어머니마저 돌아가신지가 벌써 다섯 해가 지나고 있구나. 산엔 자주 가니? 요즘도 사진 찎어?
그 좋아하는 키타는 지금 창고에서 먼지가 케케 묵고 있단다. 군대 간 작은놈은 언제 제대하니?
라고 뚝뚝 끊어지며 연결이 되지 않는 문장을 나열해 놓는 게 고작이다.
머릿속에 두드리는 "어릴 적 간직했던 푸른 꿈은 어떻게 되어가느냐"고 묻고 싶지만 되돌아오지 못할 답변을
생각하며 화재를 돌린다.
우유 한 잔에 설탕과 커피를 넣어 마시던 우유커피.
커피맛을 알 수 없어 쓴 커피보다는 달콤하고 고소한 우유커피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 마시던 기억이 문득 떠오른다.
우유커피 한잔마저 쉽게 손에 쥘 수 없는 환경이 잠시 야속하게 느껴진다.
심성이 착한 녀석이니 별 고생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삶에 대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본다.
지금의 상황을 빗대어 머지않은 미래를 예측해 보건대 결코 지금보다 나아 보이질 기미마저 보이지 않는다.
팍팍한 삶 속의 버거운 일들을 훌훌 털어버릴 수 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허물어져 흔적마저도 불분명한 작은 산성의 성곽을 걸으며 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바라고 기다리지 않더라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처럼 그의 삶에도 서서히 알듯 모를 듯 봄기운이 감돌아
기지개를 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다가올 봄에 글과 같이 친구를 보러 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공상(독백·외침)'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3.04.13-14] 귀촌지 답사 (0) | 2013.04.22 |
---|---|
[2012.12.25] 레인맨 (0) | 2012.12.27 |
[2012.01.19] 안개 (0) | 2012.01.20 |
[2011.06.17] 친구가 떠났다. (0) | 2011.06.18 |
[2011.06.17] 재미없는 얘기 (0) | 2011.06.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