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갖고 싶었던 여유로운 풍경을 친구들 모습에서 볼수 있었습니다.
갈수록 각박해 지고, 조급해 지고, 어려워지며, 어두워져 가는듯한 일상에서 잠시 탈피해서
가을빛 흠뻑 머금은 단풍이 든 외딴오두막에서 잠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담소 하고픈 모습.
시내에서 저녁을 먹기위해, 술을 한잔 하기위해 만났던 친구들의 표정과 너무 달라보였다.
주변 분위기 또한 너무 여유가 있어 보였다. 마치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가들하늘 처럼
1박2일 첫날
가을 뜨락에 만팔과 함께하는 작은음악회
바람!!! 들꽃!!! 자유!!!
라고 명명한 음악회에 참석한 십여명중
정상급카수(연택)와 색소폰 연주자(남기완) 프로실력을 갖추고도 드럼이 준비되지 않아 양동이와 빈깡통으로 드럼을 대신했던 드러머(김영호)
우리정서에 맞는 통키타로 편한 노래를 불러주던 산장지기 형님들과 대여섯 시간을 가무로 보내고 이른아침 임도길 산책을 나섯습니다.
측광으로 들어오는 햇볓은 아직 절정에 달하지않은 단풍들의 또다른 모습을 환상적으로 보여주고 있었씁니다.
그 길에 서있던 사람들.. 평소와 다른 어떤 기분이 들었을지 궁급했습니다.
저요??
잠시 시름없고 맑은 세상을 구경하고 왔다니까요?
임도길 모습도 정겹게 보이지 않습니까?
올여름 태풍으로 인하여 주변 잣나무의 반이상이 쓰러졌습니다. 임도길도 분간을 할수 없을 정도로..
만약 잣나무가 수난을 당하지 않았다면 잣을 따는 프로그램이 야유회에 포함되어졌을 겁니다.
그 쓰러진 잣나무를 넘고 넘어... 아침 산책길을 마무리 합니다.
비포장 산길에 민가도 없이 삽십분정도를 올라온 노력에 지금의 풍경이 정겹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원래 이곳은 옛날에 화전민이 밭을 일구며 생활했던 지역이었답니다.
봄이되면 개간을 위해 숲을태워 불을 지피고 그 불로인해 수시로 산불이 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박대통령 시절에 화전민을 읍내로 강주 이주 시켯다고 합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던 이곳은 국유지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사유지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저 오지의 지목중에 집을 지울 수 있는 대지와 전, 답이 많다고 하더군요.
오래된 묵전에 갈대밭이 형성되었습니다.
농사를 지을수 없는 사정이야.... 제가 신경써서 될일은 아니고 .. 한껏 철들어 버린 갈대가 가을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주니..
그냥 조~~옷습니다.
그 갈대너머 오두막집은 갈대와 잘 어우러져 보이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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