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런 출장이었다.
실무적인 일을 부하직원에게 전담을 시켜놓고 가끔씩 일의 진행사항만을 보아주었었는데, 발주처로부터 질의사항이 있다고 업무책임자에 대한 면담 요청이 왔다.
세부적인 사항을 수행하는 실무자가 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을 하였건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출장시에 일에 대한 우선순위가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이는,
- 업무에 대한 경험이 나름대로 쌓여 업무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는 건방진 생각
- 어떤 일이든 시간이 지나면 결론이 날수밖에 없다는 x배짱.
- 틀에 짜여진 매일 반복되는 회사생활에서 출장은 작은 일탈.
이런 사항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사람을 만나 업무처리를 하기 위해 신경을 쓰는 것 보다 출장으로 인한 설레임이 더 크게 작용 하나보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출장을 마다할 생각은 없는데, 이번 경우는 내가 전담하던 일이 아닌지라 부하직원에게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일요일 오전에 에어플로트(대한항공과 공동 운항하는 러시아 국적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향했다.
웹 체크인을 하게 되면 좌석을 직접 지정 할 수 있고 공항에서 발권을 위한 대기시간도 줄일 수 있어 공항으로 출발 하기 전 집에서 시도를 했지만 쉽지 않았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만 해도 어려운 점이 없었을 텐데..)
조금 일찍 도착하여 발권하는 과정에서 좌석의 등급이 프레미엄 이코노미 클래스라는 말을 들었다. 생소한 단어지만 그냥 이코노미 클래스 보다는 조금 격이 있는 듯 들렸고 그래서 창측의 좌석을 원하여 쉽게 좌석배치를 받았다.
어제까지 덥고 안개가 낀 날씨는 조금 맑은 가을 하늘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해를 쫒아 9시간가까이 모스크바로 가는 도중 중국을 거쳐 넓고 광활한 러시아 대륙을 차창 밖으로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면서
탑승 게이트 앞에서 대기하는 중 이름을 부른다.
비즈니스 클래스로 좌석을 바꾸어주겠다고 한다. 가끔, 이코노미 클래스가 만석이 되고 비즈니스 클래스의 공석이 많을 때 서비스 차원에서 그리하는가 보다. 결국 창측의 좌석은 포기를 하고 넓고 안락한(좌석을 뒤로하면 거의 침대 수준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자리를 얻어 편히 모스크바로 갈수 있었다.
비행중간 항공안내는 바이칼 호수를 지남을 알려주었다. 내 호기심은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창가로 이동하여 몇 장의 사진을 찍게 한다.
9월 중순의 모스크바는 한국의 초가을 날씨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어제까지 이곳도 이상기온으로 무척이나 더웠다고 한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하루 종일 모스크바 근처의 정유공장에서 발주처와 회의를 하면서 지냈다.
영어를 거의 쓰지 않는 그들은, 러시아어와 영어를 듣고 말함에 동시통역사의 힘을 빌렷다.
두명의 동시통역사가 하루 종일 회의실에서 한 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통역을 해댄다.
수요일 저녁시간에 복귀하게 되어있었다. 이틀간의 회의 일정이지만, 회의가 늦어져 저녁 비행기를 타기 어려울 것을 감안하여 다음날 저녁 비행기를 예약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수요일은 아침 일찎 부터 시간을 낼 수 있었고, 저녁 다섯시 까지 공항에 도착하기만 하면 되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틀 동안 긴장하여 회의를 하던 동료들은 늦게까지 음주로 그 긴장감을 풀었고, 나와 다른 한 동료는 모스크바의 붉은 광장을 둘러보기 위해 이른 아침 호텔을 나섰다.
사전에 지식을 얻어가지 못한 그곳의 외형만을 하루종일 걸어서 돌아 다녔다.
국립극장, 전쟁기념 박물관, 그리고 쌀쌀해져만 가는 붉은 광장과 기도원 ….
크레믈린은 우리나라의 청와대와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며 아예 출입을 포기하고 주변도로를 따라 한바퀴 돌고 원점에 도착할 즈음, 크레믈린궁을 관람하기 위해 줄을 선 관광객들을 본다. 이 얼마나 무지하고 무모했던가?
결국 그들과 함께 크레믈린궁을 돌아보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주변 Shopping가를 돌고 나니 호텔에 들러 공항으로 갈 시간이 되었다.
나흘간의 짧고도 긴 모스크바로의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